사외이사·감사 ‘문어발’ 여전… 겸직금지法 엇박자탓?
입력 2013-07-16 05:07 수정 2013-07-16 10:51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감사 등에 이름을 올리는 ‘문어발 겸직’이 법의 허점을 틈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장사·비상장사를 불문하고 사외이사·감사·이사직을 회사 3곳에서 겸하지 못하게 한 개정상법 시행령은 1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금융지주회사법이나 보험업법은 아직도 겸직제한 대상 회사를 상장사로만 한정해 상법과 법적 충돌마저 발생하고 있다. 사외이사들도 여러 법이 각기 다르게 규정하는 요건들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여기에다 기업 지배구조를 명쾌히 관할하는 국가기관이 없어 ‘법 따로, 현실 따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유명무실한 ‘겸직제한’=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겸직제한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한 결과 3곳 이상의 회사에서 사외이사 등을 동시에 맡고 있는 법률 위반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3월 우리금융지주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재선임된 박존지환 사외이사가 위반 사례에 해당했다고 지적했다. 박 사외이사는 재선임 당시 컨설팅 전문회사 아시아에볼루션의 대표이사, ㈜리한의 감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박 사외이사는 현재 ㈜리한 감사직을 사임해 상법 위반 요건을 해소한 상태다.
현행 상법은 ‘사외이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곤란하거나 상장회사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 금지 대상은 지난해 2월 개정 이후 ‘해당 상장회사 외 2개 이상의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 등’으로 대상이 넓어졌다. 상장사나 비상장사 구분 없이 2곳까지만 겸직을 허용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박병무 보고캐피탈어드바이저 공동대표도 비슷한 위반 사례로 본다. 동양생명보험은 지난달 박 대표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박 대표는 선임 당시 보고캐피탈어드바이저 대표이사 외에 코오롱생명과학 사외이사, 엔씨소프트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었다. 총 4곳에서 이사·사외이사를 맡게 돼 개정 상법을 어긴 것이다.
◇방관하는 정부=금융 당국은 경제개혁연대의 문제제기에 대해 유권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박존지환 사외이사 사례에 대해 “금융지주회사법이 상법보다 우선일 수도 있다. 상법과 충돌하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해야 한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지주사법의 겸직 제한 대상은 ‘주권상장법인’(상장사)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법과 지주사법은 상충된다. 어느 법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지도 논란이 있다.
이러한 법적 충돌은 사외이사 당사자들에게도 혼란을 주고 있다. 박 사외이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주회사법에 따라 비상장사 임원직을 맡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파악하고 있었지만, 상법 위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조치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이 문제를 질의하던 금융위는 박 사외이사가 위반 요건을 해소하자 “현재로서는 법적 충돌 케이스가 사라진 셈”이라며 “여유를 갖고 유권해석을 의뢰하려 한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은 박병무 대표 사례도 선명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기 어렵다고 본다. 보험업법도 지주사법처럼 사외이사의 제한 대상을 상장사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박 대표가 동양생명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면 문제가 있지만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에 사외이사 제한을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코오롱생명과학의 사외이사직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금융회사가 아니라서 금감원이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장에서는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배구조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경제개혁연대는 “재무 현황과 마찬가지로 기업 지배구조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재를 해야 한다”며 “공신력 있는 기관을 지정해 지배구조 요건 충족 여부를 주기적으로 심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경원 강창욱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