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초상화가 양성 책임진 조용진 한국얼굴연구소장 “일제 때 끊긴 조선 초상화의 맥 이어야죠”
입력 2013-07-15 19:00
이순신, 세종대왕, 정약용, 강감찬, 을지문덕, 우륵, 문무왕, 유관순….
모두 국가가 영정 초상화를 제작한 역사 속 인물이다. 1973년 국가표준영정·동상 심의 제도가 도입된 이래 문화체육관광부 심의를 통과한 영정만 해도 90점이 넘는다. 문중의 제작 의뢰 등 민간 수요도 느는 추세다.
“전통 방식의 초상화 수요는 늘지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예요. 그러다보니 몇몇 화가에게 과부하가 걸리지요.”
조용진(63) 한국얼굴연구소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문체부와 손잡고 전통 초상화가 양성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표준영정 심의를 통과했다 해도 미진함을 느낄 때가 허다하다. 문체부 산하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조 소장은 “어떤 심의위원은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조 소장은 “영·정조 시대 전성기였던 조선의 초상화는 유럽 최고인 르네상스 초상화와 쌍벽을 이루는 경지였다”고 설명했다. 투시원근법, 명암법을 쓰지 않고도 인물의 실체감을 갖고 있고, 보조물이 없어도 그 인물됨을 드러내는, 말 그대로 정신을 전하는 ‘전신화(傳神畵)’였다. 조 소장은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진술 도입, 인상파 수용, 일본식 채색화 유행으로 전통 초상화 기법의 맥이 끊기다시피 했는데 그걸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체부는 이번 사업에서 5명의 인재를 선발해 3년간 정부 지원으로 전통 초상화 교육을 시킨다. 20일까지 지원 마감되는 초상화 아카데미 합격자도 6개월 단위의 재시험을 통과해야 3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선발 기준은 뭘까. 조 소장은 “미대 입시가 어차피 서양식으로 석고 데생 잘하는 사람 위주로 뽑지 않느냐. 대학은 안 나와도 상관없다”며 “입시에는 운이 없었던 숨은 인재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초상화의 경우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주로 사용하는 눈의 집중력을 재는 ‘주시안(注視眼) 각성유지시간’이 긴 지원자가 우대받는다. 첫 6개월 동안의 기본기 훈련에선 미술사, 역사인물 연구, 복식학, 재료학뿐 아니라 해부학과 얼굴학도 가르친다.
특히 해부학과 얼굴학이 전문 분야인 조 소장은 중학교 때 ‘한국의 다빈치’를 꿈꾸며 개구리, 개, 닭, 염소 등 온갖 동물을 혼자서 해부하던 별난 아이였다.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후에는 해부학을 공부하겠다며 의대 조교를 7년간 했고, 일본에서 국내 첫 미술해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