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4가지 이미지 함정’ 탈출하라
입력 2013-07-16 04:59
지난 8일 ‘현대자동차 착한 가격’이란 기사가 인터넷에 게재됐다. 그랜저 등 4개 차종 가격을 내린다는,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기사지만 댓글은 비난일색이었다. 네티즌들은 ‘안 팔리는 모델 깎아주고 생색낸다’ ‘뭐가 착하다는 거냐’ ‘외국선 착한 기업, 국내선 안하무인’이라며 차갑게 반응했다.
7일에는 삼성전자가 기술력으로 매출을 크게 늘렸다는 기사에 ‘삼성이 뜰수록 서민은 피폐’ ‘이 정도 벌었으면 하청 좀 그만 쥐어짜라’는 댓글이 수두룩했다. 같은 날 외국계 증권사의 삼성전자 평가 기사에도 ‘혁신 없는 제조업의 한계’ ‘삼성의 폭리 장사에 속지 말라’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삼성전자는 국제 컨설팅 업체 평판연구소(Reputation Institute)가 발표한 ‘2013년 평판 100대 기업’에서 16위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컨슈머리포트를 비롯한 미국 소비자 평가에서 여러 번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런 기업들이 국내에선 뭘 해도 욕을 먹는다. 인터넷의 ‘화풀이문화’로 치부하기엔 독일 등 선진국의 ‘존경받는 기업’이 모국에서 받는 대접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1등 기업’들이 네 가지 이미지 함정에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①‘꼼수’가 있으리란 의심(“수출용과 내수용은 다를 거야”) ②‘인색’하다는 인상(“많이 벌면 뭐 하나. 베풀지 않는데”) ③권위적 CEO 이미지(“말로만 고객이 최고지”) ④막연한 반감(“재벌, 이 나쁜 놈들”) 등이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에서 ‘아제라’(한국명 그랜저TG) 5200대를 리콜하며 “내수 모델과 달라 국내에선 리콜이 필요없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소비자 사이에선 “홀대하냐”는 반발이 나왔다. 한 기업 컨설턴트는 “현대차의 경우 내수는 배짱으로 비싸게, 수출은 가격을 후려쳐서 싸게 판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반떼·쏘나타·그랜저의 한·미 판매가는 과거 미국 쪽이 크게 낮았지만 요즘은 한국이 더 싼 경우도 적지 않다. ‘꼼수 기업’이란 오랜 이미지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삼성 이건희,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각각 8000억원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천문학적 금액을 내놨지만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지 못했다. 두 회장의 약속은 모두 몇 해 전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선처’ 호소용으로 나왔다. 장소연 장이미지센터 대표는 “두 기업의 연간 기부액은 아마 국내 최고일 텐데 인색하다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며 “빈익빈 부익부 사회일수록 살아남는 건 나눔의 이미지를 쌓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최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일반 사원과 같이 명찰을 달고 채용설명회에 참석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게 화제가 될 만큼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의 이미지는 권위적이란 것이다. 기업마다 엄청난 돈을 들여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는 이미지 광고를 하지만 국내 소비자의 뇌리엔 ‘제왕적 회장님’ 모습이 깊이 박혀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기업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선진국에선 평소 복지에 기여하는 기업을 너그럽게 대하는 분위기지만 우리나라는 기업이 조금만 잘못해도 비난을 즐기는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