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막말과 반말

입력 2013-07-15 18:02 수정 2013-07-15 16:20

1932년 12월 8일자 경성일보는 ‘미곡통제안은 시국의 귀태(鬼胎)’라는 사설을 실었다. 조선총독부가 만주사변 이후 군량미 조달을 위해 쌀 유통 통제 법안을 만든 것을 비판한 글이다. “미곡통제 계획은 시국의 귀태로, 모체가 건전하여 정상적이라면 태어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귀태 때문에 모체가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미곡통제 때문에 시국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라고 썼다.

1908년 무렵 대한매일신보나 황성신문 등에서는 귀태란 용어가 ‘도깨비에 의한 임신’이란 의미로 쓰였다. 과부나 처녀가 아이를 배었을 때 도깨비의 짓인 양 표현한 셈이다. 하지만 경성일보의 ‘귀태’는 자궁 안에 포도 모양의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병리학적 이상임신인 ‘포도상 귀태’의 동의어다.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보내고 만주에서 잡곡을 수입하는 통제정책의 비상식성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쪽이든 귀태는 태어나서는 안 될 결과물을 의미한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최근 물의를 일으킨 귀태 발언은 일본 고단샤가 2010년 출간한 ‘흥망의 세계사’ 가운데 ‘대일본·만주제국의 유산’ 번역서를 인용한 것이다. 홍 의원은 “만주국의 귀태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며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박근혜 대통령과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겨냥했다.

대선 국면에서 ‘유신의 딸’ ‘독재자의 딸’이란 표현이 심심찮게 나왔는데 여권이 발끈한 것은 대선 불복 기류가 반영된 것이라고 본 때문인 듯하다. 사단 이후에도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박 대통령을 ‘당신’이라고 지칭하며 “중앙정보부를 누가 만들었나. 박정희가 누구이고 누구한테 죽었나”라고 한 발언으로 막말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니 한숨이 나온다.

이와 달리 북한 대남 기구인 조평통은 지난 11일 이례적으로 경어를 사용한 전통문을 통일부에 보냈다. ‘하였다’ ‘할 것이다’ 등 고압적 반말투 대신 ‘있습니다’ ‘것입니다’ 등 깍듯한 존칭을 썼다. “오만무례한 언동을 계속한다면 큰 화를 자초할 수 있으며 리명박정권 때보다 더한 쓴맛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는 등 내용은 여전히 협박성이다. 그러나 막말도 존대로 하니 느낌이 다르다.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가능할 듯하다. 개성공단 실무회담도 말투처럼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정치권도 막말에서 벗어나 품격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