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상호] 취약계층 안전은 모두의 책임
입력 2013-07-15 18:17
지리산자락 전남 구례에는 새처럼 구름 속에 숨어 사는 집이라는 의미의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조선조 영조 때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가 지은 집으로, 특이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지붕보다 훨씬 낮은 굴뚝이다. 굴뚝은 원래 높아야 하는데 밥 짓는 연기가 먼 데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낮게 지었다는 것이다. 밥 짓는 연기가 이웃들의 허기를 더할까 하는 주인의 깊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 곳간채에는 통나무를 파서 만든 절구통 모양의 뒤주 하나가 있다. 그 뒤주 아래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말 그대로 누구라도 능히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유씨 가문은 수확량의 20%를 뒤주에 담아 쌀이 떨어진 사람이면 누구나 퍼갈 수 있게 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아직도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취약계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노후한 전기·가스 등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이들은 화재·폭발 등의 사고 위험에 방치돼 있다.
생계조차 어려워 안전 문제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는 재난취약계층을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을까.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자신과 기업, 정부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책임이 아닐까.
다행히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진화하고 있다. 환경·안전·나눔 등 사회공헌의 핵심 가치들이 경영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02년 사회공헌 투자액은 1조865억원이었으나 2011년에는 3조1241억원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사회공헌활동 건수도 2004년 572건에서 2011년 2003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확대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부도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재난취약계층 대상 안전복지 서비스의 하나로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을 펼쳤다. 이 기간에 170억원을 투입, 국민기초생활수급자 39만1000가구를 안전점검하고 정비했다.
이 사업은 재난관리 영역에서 ‘안전복지 서비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기초적인 보호를 사회보장의 한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국민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대상인 안전을 복지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데 의의가 컸다.
안타깝게도 이 사업은 예산 문제로 올해부터 중단됐다. 하지만 취약계층 대상 안전복지 서비스 사업은 계속될 것이다. 전기·가스·보일러 분야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문기관에서 추진하고, 소방 분야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소화기와 감지기 등 기초 소방시설을 보급해 나간다.
앞으로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 취약계층에 대한 재난 예방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사업 대상 범위를 넓혀 쪽방촌 거주자, 장애인 등 모든 취약계층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안전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일에 예산을 더 쓴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가난한 서민들을 화재·폭발 등 대형 사고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곳간을 열어 누구든지 쌀을 퍼가게 하고, 밥 짓는 연기가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배려한 유씨 집안의 베풂이야말로 취약계층의 재난 극복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우리 모두가 되새길 덕목이 아닐까.
남상호 (소방방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