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지키려는 순간 떠나는 것

입력 2013-07-15 18:20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변화와 개혁이 수월하게 진행됨을 역사는 말한다. 절대왕권을 내려놓았을 때 의회민주주의가 싹텄고, 가진 자가 세금폭탄을 마다하지 않을 때 복지국가의 기틀이 잡혔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강제성이 수반되면 역사는 이를 혁명이라 이르고, 서서히 진행될 때 개혁이라 부른다.

스포츠도 변화와 개혁의 예외일 순 없었다. 변화와 개혁을 외면한 스포츠는 퇴행의 길이 예약돼 있었다. 특히 올림픽 종목은 미디어 친화적이냐 아니냐로 극명하게 운명이 갈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반세기 동안 프로선수를 포함해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TV 중계에 적합한 방식으로 스포츠의 변화를 유도했다.

변화·개혁만이 태권도의 살길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30년간 양궁이 올림픽 때마다 경기방식을 바꾼 것은 미디어 친화적으로 가는 몸부림이었다. 또 배구의 랠리포인트제 채택이나 탁구의 11점제도 TV 중계에 유리한 방향으로의 진화였다. 농구의 쿼터제는 광고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TV사에 더 많은 수입을 보장했다.

IOC의 이 같은 흐름을 외면하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던 야구는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됐다. 또 3000년 가까운 전통에 안주하며 개혁에 미온적이었던 레슬링도 IOC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1994년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태권도도 오래전부터 변화와 개혁의 시험대에 올랐다. 잦은 판정시비와 한국인 중심의 행정은 끊임없이 발목을 잡았다. 마침내 종주국의 기득권 포기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지난해 런던올림픽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F)은 한국선수에게 유리했던 심판 판정제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대신 전자호구를 도입, 타격 시 자동 채점되는 방식으로 바꿨다. 미심쩍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즉석 비디오 판독 결과를 관중들에게 생중계했다.

판정시비가 싹 사라지고 비로소 공정한 판정이 이뤄졌다. 그동안 한국인이나 한국계가 맡아왔던 WTF 사무총장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스위스인으로 바꿔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 사무실에서 상근토록 했다. 종주국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니 세계인이 좋아했다.

마침내 지난 2월 IOC 집행위원회는 고대올림픽 종목이던 레슬링을 밀어내고 태권도를 25개 올림픽 핵심종목에 포함했다. 레슬링의 반발 속에 핵심종목을 최종 결정짓는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IOC 총회를 앞두고 또 한번의 ‘내려놓음’이 이목을 끌었다. WTF 총재 후보로 야심 차게 나섰던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한국인들끼리 선거전을 펼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최근 후보를 사퇴했다. 그는 15일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열린 WTF 총회 때 사퇴를 공식화하고 조정원 현 총재의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태권도 개혁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4연임에 성공한 조정원 WTF 총재는 “태권도를 한국인의 것으로 만들려는 순간 세계인은 떠난다”는 말로 종주국의 기득권 포기를 언급했다. 그는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태권도를 전 세계인들에게 놔줘야 한다”면서 세계화를 위한 아픔도 감내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내 것 내려놔야 세계화 앞당겨

‘단증발급기’란 오명을 썼던 태권도의 본부 국기원도 홍문종 신임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마침 취임 후 처음 WTF 총회에 참석한 김태환 대한태권도협회장(새누리당 의원)은 “태권도 3단체가 힘을 모아 태권도 발전과 국제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며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원조 한류로 한국을 가장 잘 대표하는 브랜드인 태권도의 활성화를 위해 모처럼 맞이한 태권도 단체 간 밀월무드가 태권도 개혁과 변화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