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봉남 (3) 쌀독 빌 때마다 “그림만 그려라” 주님 도움이

입력 2013-07-15 18:01


“심심하지도 않아? 혼자 무슨 재미로….” 화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성서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시작한 후 혼자 조용히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명상하며 기도생활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화실에 들어오면 시간이 왜 그렇게 잘 가는지, 금방 저녁때가 됐다. 어떤 때는 밤이 지나 아침이 될 때도 있었고, 점심과 저녁을 먹었는지조차 모를 때도 간혹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내는 쌀독의 쌀을 모두 긁어 아침상을 차렸다. 우리 네 식구가 점심부터 굶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에 들어왔는데도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굶어도 괜찮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됐다.

무작정 작업실을 나와 아무 버스나 올라탔다. 버스 의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종점까지 왔다갔다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인간은 육의 양식을 쫓아가기 마련이지 않은가. 하지만 물질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영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녁 늦은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저녁이 되니 낮에 힘을 얻었던 생각들은 어디로 가고 다시 맥이 풀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내가 환한 표정으로 저녁 밥상을 내놓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내게 아내는 “낮에 시동생이 어깨에 쌀을 메고 왔었어요”라며 고마워했다. 동생은 이상하게 우리 집에 가고 싶었고 뭐 사갈 게 없나 생각하다 쌀을 사왔다고 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에 즐거웠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어떤 때는 누군가 그림을 사러 오기도 했다. 어떤 때는 교회에서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시곤 했다. 하나님께서 수입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 생활에 필요한 만나를 주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힘을 얻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졌다.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니 매일 읽는 성경 내용들이 그동안 멀리 있는 스크린으로 보였던 게 바로 옆에서 실재하는 듯 살아 있는 말씀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영적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눈에선 마치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어떤 강한 힘이 뿜어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성서 속 인물들이 순교를 하고, 감당했던 사역들이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임을 깨달았다. 작업에 몰두할 때는 잡음은 물론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전통적인 종교와 사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미술이 융화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개신교에서는 교리적인 영향으로 미술품들을 우상시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기독교 미술에 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한국적인 기독교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모태신앙인으로 그동안 교회일이라면 우선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새 달란트를 주시고 나서부터는 기독교 미술 공부를 해야 했기에 교회일보다 성서 그림 작업에 몰두하곤 했다.

화실 안에서 혼자 명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셨다. 헌신하는 자세로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경 내용은 주인공 위주로 기록돼 있었다. 그래서 성서 외에도 주변 환경과 정세, 성서 속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연구하다 보니 더딘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경은 사명을 가진 내게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와 기독교 미술작품을 한 점 한 점 완성해 나갔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