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약 판매 ‘본궤도’… 약국 문 닫은 휴일 환자 몰렸다

입력 2013-07-15 05:18


편의점에서 감기약이나 소화제 같은 상비약을 판매한 지 꼭 8개월이 됐다. 그동안 편의점 약이 가장 많이 팔린 날은 설날(2월 10일)이었다. 주말과 휴일 판매량이 평일의 두 배나 됐고, 낮보다 밤에 약을 찾는 손님이 훨씬 많았다. 약국이 문을 닫는 ‘사각 시간’에 환자들은 편의점으로 달려간 것이다.

‘편의점 약 판매’는 지난해 11월 15일 시행되기까지 숱한 곡절을 겪었다. 대통령이 지시했지만 약사들의 반대로 무산될 뻔하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밀어붙였다. 약사들은 당시 의약품 부작용과 오·남용 문제를 제기하며 선진국에서 대부분 시행되는 이 제도를 극렬하게 반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내부 보고서에서 이 제도가 “별 문제 없이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8개월 시행해보니 약국 영업시간에 따른 환자 불편을 덜어주자는 취지대로 ‘구매 행태’가 나타나고 있으며 부작용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 난리를 쳤던 반대론자들은 별로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일보가 14일 입수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전후 의약품 사용 및 인식변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지난 3월까지 편의점에선 하루 평균 평일 5만4819개, 주말 10만5228개의 상비약이 팔렸다. 소비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편의점 약을 사봤다는 사람은 120여명이었고, 이중 66.2%가 ‘심야나 공휴일에 샀다’고 답했다. 편의점에서 약을 사먹은 뒤 부작용을 겪었다는 응답자는 1명뿐이었다.

편의점의 약 매출은 지난 8개월간 두 배가량 늘었다. 편의점 체인 CU는 지난달 상비약 매출이 지난해 11월보다 171.8%, 미니스톱은 210% 증가했다. 미니스톱 관계자는 “평일 대비 토요일은 50%, 일요일은 89% 정도 판매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팔린 건 감기약으로 전체 판매량의 36.2%(118만 9000개)를 차지했고, 해열진통제 29.3%, 소화제 24.1%, 파스 10.4% 순이었다. 감기약 제조사 D제약 측은 “소비자 접근이 쉬워져 편의점에서 연간 10억~20억원 상비약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화제를 만드는 H약품 관계자는 “편의점 판매로 월평균 1억6000만~1억8000만원 매출을 올린다. 당초 예상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일보가 지난 5일 돌아본 서울 편의점 20곳 중 5곳은 상비약품 포장판매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편의점 약품은 한 번에 1일 복용량만 팔도록 포장돼야 한다. 서울 흑석동 편의점주 박모(45)씨는 “타이레놀 500㎎은 1회 판매량이 8정인데 손님들이 더 원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도 한 손님이 타이레놀 24정을 사려고 해 제지하다 고성이 오갔다”고 말했다.

연구원 조사에선 서울의 편의점 근무자 254명 중 31명(12.2%)이 ‘손님이 부작용을 신고할 때 의사나 약사에게 문의토록 안내한다’는 준수사항을 모르고 있었다. ‘약을 다른 상품과 섞어 진열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도 13.8%가 알지 못했다.

한편 노년층의 편의점 상비약 이용률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편의점 약 구매자는 51.6%가 30대 이하였다. 40~50대가 47.2%, 60대 이상은 1.2%에 그쳤다. 연구원은 “제도 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판매자 교육과 노년층 상대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사야 박은애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