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한우물’ 전략 구사 獨 히든챔피언 카처社
입력 2013-07-14 17:31
고압청소기 독보적… 세계 문화유산·랜드마크 세척
히든챔피언으로 분류되는 독일의 중소기업들은 대개 틈새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한우물’ 전략을 편 결과다. 일부 기업은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힘든 자신만의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 100%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한다. 한우물 전략이나 과도한 시장지배력은 그만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좁은 시장에선 성장의 한계가 있는 데다 해당 업종에 불황이 닥치거나 급격한 기술변화가 있을 경우 회사가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즉석카메라가 쇠락한 게 대표적인 예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업종 다각화에 나서는 것도 한우물 파기의 위험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집스럽게 한우물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독일의 히든챔피언들은 어떻게 한계를 극복했을까.
‘히든챔피언’ 저자 헤르만 지몬 박사는 “한 나라의 시장 자체가 좁지만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특정 제품에 집중하면 그 분야 문제를 누구보다 더 잘 해결하는 방법을 잘 알 수 있어 경쟁사들의 모방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좁은 시장의 한계는 세계화 전략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경쟁 리스크’가 한우물 전략보다 더 위험하다는 의미다. 중소기업 히든챔피언 연수단은 방문한 독일 기업들 중 한우물 전략과 세계화의 대표적인 성공기업으로 고압력 산업 청소기 분야 세계 선두기업인 독일 카처사를 꼽았다. 1935년 알프레드 카처가 설립한 이 회사는 80년 1억 유로였던 매출이 지난해 19억2000만 유로로 급성장했다.
지난 4월 말 독일 슈투트가르트 북동쪽 빈넨덴에 위치한 카처 본사에서 만난 울리히 슈마허(사진) 홍보부장은 처음부터 한우물 전략을 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슈마허 부장은 “1950년 세계 최초로 온수 고압청소기를 발명했지만 다른 모든 제품군을 포기하고 고압청소기만 집중 생산하자고 결정한 때는 24년 후인 1974년이었다”고 말했다.
74년 당시 카처의 가장 인기 제품은 고압청소기가 아닌 증기발사기였다. 슈마허 부장은 “당시 카처는 증기발사기와 어린이 장난감, 선박의 부력을 높이는 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었지만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압청소기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제품군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75년부터 주문량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2006년 6000명이었던 직원 수는 지난해 1만명으로 늘었다. 카처의 한우물 전략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와 기술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면 실행이 불가능했다. 슈마허 부장은 “혁신과 기술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이 회사 성장의 바탕이었다”며 “회사 설립 이후 1300개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현재까지 유효한 특허만도 500개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카처가 꼽는 또 하나의 성공비결은 독특한 세계화 전략이다. 인구 3만명도 안 되는 소도시에 기반을 둔 카처는 직원이 단 50명일 때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시작했고, 한우물 전략이 본격화한 75년부터 매년 한 곳 이상의 새 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을 비롯해 60개국에 진출했으며 지사 수만 100개에 이른다.
카처는 지사 책임자를 현지인을 임명해 마케팅, 투자결정 등 전권을 위임하는 독특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카처는 홍보 수단으로 각국의 랜드마크나 문화유산을 고압청소기로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30년 넘게 벌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이집트 멤논거상,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서울 남산타워 등 30여년간 카처의 손길을 거쳐 간 기념물들은 90개가 넘는다. 청소장비만 연구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십분 활용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의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카처는 사회공헌 활동이 단순한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슈마허 부장은 “각국의 랜드마크는 표면이 모두 다르며 그에 따른 고압청소기 분사 방법도 달라야 한다”며 “미국 러시모어 국립공원에서 대통령 얼굴 조각상을 청소했는데 100m가 넘는 호스를 연결해 고압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는 점에서 회사의 기술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카처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가정에서 쓰는 일반 진공청소기만 해도 카펫과 타일 바닥을 쓰는 나라마다 제각각 세분화한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소기업 히든챔피언 연수단과 함께 독일을 방문한 코트라 김평희 글로벌연수원장은 “카처의 세계화가 성공한 것은 고객의 입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원칙에 충실한 결과”라며 “회사 문화가 겉치레가 없이 진솔하고 튼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빈넨덴=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