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16) 히든챔피언의 성공비결

입력 2013-07-14 18:03 수정 2013-07-14 20:14


‘라인강의 기적’ 대표적 강소기업 트룸프社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안정된 가족경영, 레이저 공작기계 분야 세계 최고 기술력 보유, 50%가 넘는 수출 비중.’

국내 중소기업 연수단이 지난 4월 말 방문했던 독일 트룸프사는 히든챔피언 성공 공식에 가장 충실한 기업이다. 하지만 성공 유전자는 따로 있었다. 성장 지향성과 진화하는 기업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벤츠의 도시’ 슈투트가르트 인근 소도시인 디칭엔에 본사를 둔 트룸프사. 카뮐러 마티어스 사장은 “회사 운영의 첫 번째 목표는 매년 최소 10% 성장 달성”이라고 말했다. 성장을 해야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지 않고 자기 자본으로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장기계획 아래 연구·개발(R&D) 투자가 가능하려면 재정 안정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는 꾸준한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트룸프사는 2008년 리먼사태 때를 제외하고 연평균 15%에 육박하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해 왔다. 1950년대엔 10년 만에 매출 11배 성장을 이뤄내 ‘라인강의 기적’의 대표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트룸프가 무작정 성장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기술 혁신에 매진했다. 마티어스 사장은 “매출의 7% 정도를 R&D에 투자하는데 이는 독일 기업 평균의 배가 넘는 액수”라며 “대부분 투자는 제품 개발에 쓰이지만 원가절감을 위한 공정혁신에도 함께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트룸프는 66년 컴퓨터로 자동제어가 되는 공작기계를, 79년부터는 레이저 가공기기를 제작하게 됐다. 또 85년 레이저 기계 자체 계발에 성공했다. 현재는 고성능 레이저를 개발해 원자재 가공 및 박판, 후판을 가공하는 공작기계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트룸프 스스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숙련인력 부족이다. 바이에른주 등 독일 자동차·전자 산업의 중심지인 남부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기업들은 최근 들어 숙련인력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해 2010년 한 해 약 250억 유로의 부가가치 손실이 발생했다는 통계도 있다. 심각한 문제는 대학 졸업생이 2030년까지 230만명 감소하는 등 전문인력 공급 부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트룸프는 과감히 기업문화 혁신을 감행한다. 숙련인력, 특히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친화적 근무환경 조성에 나선다. 그 결과 독일 내에서도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트룸프의 근무시간 조정 시스템이 나왔다.

이 시스템에 따라 트룸프 직원들은 2년에 한 번씩 일주일 근무시간을 최소 16시간에서 최대 40시간까지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마티어스 사장은 “막 입사한 신입사원은 40시간을 다 채워 일할 수 있고 결혼 후 아기가 생겼거나 집안일이 있을 때는 주 30시간만 일할 수 있다”며 “대신 일한 시간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부분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1년 도입된 이 제도 덕분에 임직원들은 일과 병행하는 삶의 패턴에 맞게 장기계획을 짤 수 있게 됐고 일의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특히 이 제도가 입소문을 타면서 트룸프사는 독일 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다니고 싶어하는 회사가 됐다.

트룸프사 관계자와의 집중 토론을 마친 중소기업 연수단의 한 참가자는 “경영진과 근로자 대표협의회가 오랜 협의 끝에 근무시간 조정 시스템 방식을 만들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제도 도입 후에도 의견 조율을 거쳐 시스템을 개선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노사의 신뢰관계는 근무시간 조정 시스템 도입뿐 아니라 2008년 리먼사태 이후 맞은 회사 최대 위기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리먼사태 이전에 트룸프의 많은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했고, 회사는 근로자들이 저축했던 근로시간을 추후 사용하게 했다. 마티어스 사장은 “리먼사태 이후 일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저축해놓은 근로시간이 있기 때문에 임금은 거의 똑같이 받았다”며 “대신 자금 사정이 한창 어려웠던 6개월간 회사는 직원 월급의 80%만 지급했고 13%는 정부에서 보조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리먼사태 이후 매출이 줄면서 성장이 정체됐지만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며 “근로자 대표협의회와 대화하고 정부와 공조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트룸프는 1923년 크리스티안 트룸프가 설립했지만 2대부터는 라이빙거가(家)가 경영을 맡고 있다. 니콜라 라이빙거 카뮐러 회장과 동생인 피터 라이빙거 부회장, 그리고 마티어스 사장 등 총 6명이 경영진을 구성하고 있다. 마티어스 사장은 회장의 남편으로, 공작기계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디칭엔=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