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봉남 (2) 주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제주 한라산기도원으로

입력 2013-07-14 16:53


예수님을 만난 것은 충격이었다. 한 가족의 가장이기 때문에 화가라는 직업의 선택을 무척이나 주저했는데 예수님을 만난 뒤 용기가 생긴 데 놀랐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위해 기도원에 가려고 짐을 쌌다. 아내는 내심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기도원에 갈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얼른 “응, 한얼산기도원에 다녀올게요”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내가 탄 버스는 녹색들판 가운데로 뚫린 길을 달렸다. 산들바람에 앞으로의 인생도 이 바람처럼 시원하고 상쾌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한얼산기도원과는 다른 방향인 부산행 고속버스를 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부산까지 내려갔다. 어디든 어쩌랴. 기도드리는 그곳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실 것이니 말이다.

부산 용두산공원에 올라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부산에 처음 왔습니다. 아는 곳도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바다에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제주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주행 배에 탔다. 작은 호수에서 보트는 타보았지만 그렇게 큰 배를 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배 갑판에 나와 망망대해를 봤다. 미지의 세계는 희망찬 미래만을 안겨줄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도착한 ‘한라산기도원’, 옥빛으로 물든 하늘은 높고 맑았다. 투명한 햇살이 빛나는 남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서 인생계획을 세우는 일주일 동안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또 한번 감사기도를 드렸다.

지난 30여년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던 간절한 소망을 이루지 못해 방황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나타나 직접 확실한 달란트를 확인해 주신 것에 더없이 감사하고 감사했다. 화가로서 사람들에게 유익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꿈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흥분됐다.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 일들에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의지력까지 상실한 형편없는 내 모습에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원하던 ‘화가’라는 달란트를 확신해주시다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희망과 희열감을 느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본 기도원이었다. 하지만 그때 기도했던 일주일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땅에서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알게 해주었던 것이다.

기도원에서 나온 뒤 본격적으로 ‘기독교미술’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이미 아내와 아들, 딸 세 식구를 보살펴야 하는 가장이었다. 벌어놓은 돈은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도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고 미래의 삶에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으로 확신하니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서 화가로서 여러 계획과 새 달란트 실현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피 끓는 30대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기독교미술이었기에 강한 힘이 솟구쳤다. 더욱 강한 선과 색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면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창조행위, 이런 것들이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강한 신앙심을,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더욱 밀착시켜주는 원동력이 됐다.

하나님과 관계를 새로 정립해 가면서 ‘성화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던 화가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역경이 시작됐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