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 젊기에 뛰어든 ‘베토벤 대장정’… 관객들도 ‘매진 행렬’로 응원

입력 2013-07-14 17:04


32개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2년 동안 총 8회에 걸쳐 완주하겠다, 그것도 1번부터 순서대로 짚어나가며 작곡가의 인생을 따라가겠다.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25)의 쉽지 않은 도전이다. 2012년 3월 29일 시작한 그의 베토벤 프로젝트는 매회 거의 매진됐다. 이제 9월 14일과 11월 2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단 두 번의 공연만을 앞두고 있다. 빡빡한 세계투어 스케줄 속에 잠시 한국을 찾은 그를 최근 만났다. 예전보다 살은 빠졌고, 소탈하고 진중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 베토벤에 빠진 ‘젊은 거장’

2009년 베토벤 협주곡 다섯 곡을 연주한 후 욕심이 생겼다. 25세가 될 때까지 소나타 전곡을 해보면 어떨까. 운 좋게 이런 생각이 구체화됐다. “언젠가 할 거 젊었을 때 미리 해놓으면 나중에 훨씬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죠.”

처음엔 힘들었다. “마라톤도 처음 5㎞는 힘들지만 계속 뛰다보면 10㎞, 20㎞ 계속 가게 되잖아요. 이 프로젝트도 이제 7부 능선을 넘고 있지요.” 9월에 들려줄 베토벤 소나타 27·28·29번은 그가 관객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긴장감이 다르다. 이 중 29번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의 이전 모든 소나타를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수작이다.

32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을까. 그는 다 비슷하지만 21번을 조금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발트슈타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곡이다. “틈새가 하나도 없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완벽하죠.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어요. 연주를 하면서 내가 대단한 곡을 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베토벤 예찬도 이어진다. “본능적으로 흥에 겨워 연주한다든지, 기분에 따라 해석이 바뀌면 큰일 나는 작곡가가 베토벤이지요. 작곡가가 세세하게 다 써놨고 요구하는 게 명확하니까요.”

김선욱은 지난해 독일 본에 있는 작곡가의 생가 ‘베토벤하우스’에서 열린 베토벤 탄생기념 초청 연주회에서도 공연했다. 2007년 그곳에 처음 갔을 때는 무척 떨렸다. 지금은 떨리기보다는 내가 놓친 게 있나, 또 무엇이 있나 하는 호기심이 더 크다. 베토벤의 피아노나 작곡한 악보를 본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베토벤 곡은 객기나 자신감만으로 연주할 수 없어요. 기본기가 갖춰져야 하지요. 어릴 적부터 전공생이 머리 싸매고 베토벤을 하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 런던에서 신혼 즐기는 음악가

김선욱은 지난해 일곱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다. 2008년 영국 아스코나스 홀트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한 후 5년째 런던에서 살고 있다. 진행 중인 일본 투어가 19일 끝나면 연말까지 영국 아르헨티나 스위스 스웨덴 프랑스 등을 누비며 연주회를 갖는다. 공연 3∼4일 전부터는 다른 것은 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집에 있는 시간이다.

“짐을 자주 싸고, 호텔에 묵는 시간이 많아 집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한국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친구도 만나요. 다른 사람이랑 똑같아요.” 특히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첫 회부터 다 봤을 정도로 팬이다.

김선욱은 3세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세 살 많은 형 때문이다. “어릴 적에 형이 하는 거 다 따라하고 싶어서 피아노학원에도 가게 됐어요. 그때는 기준이 콩쿠르 성적인데 결과가 좋았지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어쩌면 바이올리니스트가 됐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동시에 했다. 중학교 가기 전에 고민하다가 바이올린을 그만 뒀다. “그때 너무 슬퍼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한동안 미련이 남았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요.”

10세 때 금호영재 시리즈를 통해 연주 무대에 데뷔한 그는 2006년 세계적 권위의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대회 40년 만의 최연소(18세), 아시아인 최초 우승이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영국 왕립음악원을 졸업했다.

평소 손가락 관리는 어떻게 할까. “축구 야구 테니스 골프 다 좋아하는데 볼링만 쳐도 이틀 동안 피아노를 치기 어려워요. 꺼리게 되죠. 그게 관리죠. 뭐.” ‘손가락 보험’은 들었냐고 했더니 “나중에 보험금 타고 피아노는 안치려고요?”하며 손을 젓는다. 그는 인터뷰 내내 “난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며 자신을 낮췄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