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창조경제와 독일 상인정신
입력 2013-07-14 18:46
요즘 우리 국회에서 가장 회원이 많은 연구모임은 ‘독일 연구회’다. 무려 국회의원 1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창조경제라는 말이 나온 이후 우리나라에는 독일 붐이 불고 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우리와 여건이 너무 다르자 세계 4위 경제대국이고, 세계 최강 기업을 다수 보유한 독일로 바뀐 것이다.
독일은 지난해 240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국민총생산(GNP)은 3조5000억 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독일의 이러한 이면에는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를 비롯한 세계 1위의 자동차산업이 버티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 부품의 보쉬, 가전의 지멘스, 기계의 AEG가 있다. 철강에서는 세계 최정상급의 티센 쿠르프 철강그룹이 있으며 화학에서는 바스프, 바이엘, 이온(E-on) 등과 금융에서 총자산 세계 1위인 도이체방크, 코모츠방크, 포스테방크 등이 받치고 있다.
중세부터 이어진 기업가 정신
독일의 산업 중심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뮌헨을 중심으로 한 전자·자동차·우주항공 산업 지구가 있다.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기계산업 중심지도 핵심이다. 함부르크를 중심으로는 해운·무역·미디어·출판·서비스 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독일이 이렇게 세계적인 산업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상인정신 때문이다. 독일에는 ‘한자적인(Hanseatisch)’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자동맹’에 소속된 상인 도시 사람들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한자적인 사람은 나서기를 싫어하며 상황을 끝까지 주시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상인으로서의 노회함과 철저함이 있는 것이다.
함부르크에는 600년 전통의 상인 클럽이 있다. 이 클럽의 이름은 ‘디 한세(Die Hanse)’ 즉, 한자동맹이라는 뜻으로 600년 전 한자동맹이 본격화될 무렵 출범한 뒤 독일의 함부르크를 비롯해 10여개 도시와 덴마크, 스웨덴의 10여개 도시들이 동맹에 참여했다. 이후 지금까지 이들은 서로 우의를 다지며 협력하고 있다. 회원이 약 1000명에 달하는 이 클럽의 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①신의를 지킨다. ②개방된 자세로 사업에 임한다. ③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④돈을 벌면 그 돈으로 사회봉사를 한다(오늘날 함부르크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자선재단이 있는데 상인들은 자신들이 번 돈의 일부를 장애인·빈민 및 문화예술 산업에 과거 500년 전부터 기부해 왔다). ⑤사회·경제 질서유지에 책임을 다하며 매점매석, 폭리 등 상인으로서 어긋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는 한자도시 상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세서 황제나 성주에게도 무릎을 꿇는 인사는 절대 하지 않았다.
철학 없는 발전은 사상누각
지금까지 생산성 패러다임의 최강자는 독일이다. 2013년 독일 경제는 여전히 파란불이다. 독일은 유럽의 재정위기와는 아랑곳없이 쾌속질주 중이다. 그 이면에는 독일 상인의 상인정신이 있었다. 조직, 규율, 효율, 정확성 등도 독일 상인의 특징이다. 그들은 이러한 철학의 바탕 위에 오직 한 우물만 판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한순간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지 않겠다.’ 가전기업 지멘스의 철학이다. 멀리 내다보고 오래 가겠다는 뜻이다. 창조경제가 실효를 거두고 한국의 체질이 더욱 더 튼튼해지려면 상인정신, 기업가 정신이 바로 서야 하고 그러한 바탕 위에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창조경제는 사상누각이다.
홍하상(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