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베데스다를 박차고 일어나라

입력 2013-07-14 16:52


요한복음 5장 1~15절

요즘 학교폭력과 학업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격을 다듬어야 하는 학교에서 진학을 위주로 하는 체제에 적응을 못해 생기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꿈과 용기를 줘야 하는데, 오히려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등장하는 ‘베데스다’ 연못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떠한지, 우리가 그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첫째로, 세상에는 이름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데스다’라는 아람어는 ‘집’이라는 뜻의 ‘베뜨’와 ‘자비’라는 뜻의 ‘헤세드’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베데스다에 자비가 있었습니까. 중풍으로 38년이나 된 병자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해 절망하던 그곳에 자비가 과연 있기나 했습니까. 우리 역사에서 ‘정의사회구현’을 말하던 정권이 정의를 세우지 못했고, 민주를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민주적이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수식어로 하는 사람인 만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처럼 명실상부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세상에는 1등만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동일한 물인데,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만 병이 나았습니다. 질병 치료를 위해 연못에 온 병자라면, 제일 먼저 뛰어들기 위해 언제나 혈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연못에서는 0.01초 근사한 차이의 2등으로 물에 뛰어든다 해도, 그 노력은 수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연못의 병자들은 서로에 대한 긴장과 갈등, 경쟁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 역시 1등만 인정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세상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특정한 곳에 가두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병자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질병의 원인을 죄로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따가웠거나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베데스다에 모였을 수 있습니다. 또한 권력자들은 보기 싫은 병자들을 베데스다에 모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편견 때문에 고통당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장애인이나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와 새터민에 이르기까지 더불어 살아가도록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1등만 대접하고, 약자들을 특정한 곳으로 격리시키는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38년 된 병자가 연못에 먼저 들어가도록 돕지 않으셨습니다. 1등만 인정하는 경쟁체제를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 병자에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못을 떠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경쟁체제에 안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자 요구였습니다. 공생애 당시 주님은 세리나 창기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약육강식의 경쟁체제를 거부하고, 약자들의 필요에 응답하면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종훈 목사(연세대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