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종원] 미국인의 행복지수
입력 2013-07-14 17:39 수정 2013-07-14 16:33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지난 몇 년간 미국경제를 짓눌렀지만, 이제 미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주택담보대출의 대량부실로 시작된 위기가 리먼브러더스의 도산,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된 이후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난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양적완화 축소계획이 경제에 큰 혼란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 해도, 전반적으로 미국경제가 호전되고 있다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있다. 경제가 아직도 조금 어렵다고는 하지만 미국인들의 가계소득은 증가되고 있으니, 그들이 과거에 비하여 한층 행복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과연 미국인들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실제로 미국인은 잘 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중 미국인들의 평균 가계소득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활만족도는 가계소득 평균 16위에 불과한 덴마크에 비하여 월등히 낮아 11, 12위에 불과하다. 거꾸로 덴마크는 생활만족도가 1위이다. 2013년 주택, 소득, 직업, 환경, 안전, 직업과 생활의 균형 등 11개 항목을 아우른 OECD 삶의 질 조사에서는 호주가 3년 내내 1위였지만 미국은 6위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이 삶의 질을 결정하지도 않고, 경제적 부(富)가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인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증명된다. 지난 4월 해리스 폴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2345명 가운데 단지 33%만이 매우 행복하다고 답하였는데, 2008∼2009년 조사보다 낮은 수치다.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은 소수집단, 대학졸업자, 장애인층에서 높게 나왔다. 여기서 대졸자들은 소위 밀레니엄 세대로서 미국에서 가장 스트레스 정도가 높은 집단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높은 대학등록금 부담과 취업압박에 시달리는 우리 대학생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 좌절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이 경제적 부를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으로서 점점 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오히려 뭔가 ‘충족적인 삶’을 사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결국 경제가 나아지고 평균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도 국민 전체의 행복하다는 평가는 떨어지고 있다니, 비록 미국의 사회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국민행복과 행복지수의 논의가 한창이므로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할 커다란 사회과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고민은 이미 여러 곳에서 시작되었다. 유엔은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 개념을 GDP를 대체하는 경제지표로 개발 중이다. 캐나다와 영국은 자체 통계에 행복에 관한 질문들을 포괄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지방정부들도 ‘지방안녕지수’를 개발하고 있다. 2010년에 버몬트주, 메릴랜드주, 시애틀시, 위스콘신 유크레어시 등에서 각각 나름의 행복지표를 개발한 바 있다. 이듬해에 산타모니카시에서 자체 도시안녕지표를 개발한 팸 오코너 시장의 말을 빌리면 안녕(wellbeing)을 건강(wellness)과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되며 안녕이란 충족, 관여, 만족, 긍정적 전망과 건강수준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좋은 거버넌스’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박근혜정부의 국정지표로서 국민행복지수를 발표하고는 있으나 다양한 인구적,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행복수준에 관한 조사 결과는 없다. 엄격한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경제수준이 나아지고 있는데도 불안한 경제와 직업 환경, 지나친 경쟁이 가져오는 심리적 압박, 노후걱정, 등록금부담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은 커져가고 행복감도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를 실제적으로 측정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중앙정부 차원의 국민행복지수의 세밀화, 고도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치단체 차원의 소위 ‘지방안녕지수’ 개발이 필요하다.
이종원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