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과 스포츠] 회장님 고개 숙일때 팀 성적은 곤두박질 친다
입력 2013-07-13 04:02 수정 2013-07-13 04:20
지난해 런던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결승전이 열린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올림픽 7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궁사들은 관중들의 환호에 답한 뒤 바로 응원석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있었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부회장은 여자 양궁 선수들을 차례로 껴안고 기쁨을 함께 나눴다.
◇재벌과 공생하는 한국 스포츠=한국 스포츠는 재벌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1980년대 초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5공화국 정부가 올림픽 성적을 위해 경기 종목을 재벌기업들에 할당한 게 시작이었다. 레슬링-삼성, 양궁-현대, 축구-대우, 탁구-동아건설, 복싱-한화 식이었다.
양궁만 하더라도 현대가의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대를 이어 지원한 덕택에 지난 30여년간 세계 최강을 지켜갈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삼성은 육상·빙상, SK는 핸드볼·펜싱. 한화는 사격, 대한항공은 탁구의 단체장을 맡아 비인기 종목 육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이뤄낸 세계 5위의 성과는 이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추어 종목뿐 아니라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국내 4대 프로 구기종목은 재벌기업의 참여가 없다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 총수와 프로야구의 함수관계=재벌은 기업 이미지 홍보를 위해 프로스포츠를 적극 활용한다. 프로야구의 경우 지난해 처음 관중 700만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야 야구가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포스트 시즌에 총수 일가가 야구장을 찾는 것은 이제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가 돼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총수의 관심 속에 잘나가던 야구팀 성적이 총수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경우 성적이 곤두박질친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잘나가던 SK 야구단은 올 들어 7위까지 떨어지면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2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신생팀 NC에도 뒤진 채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화도 총수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위장 계열사에 자금을 부당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승연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 특검이 이건희 회장을 배임죄로 기소했던 2008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정규리그 4위로 부진했다. 두산 베어스도 2006년 모기업 수뇌부가 사법처리됐을 때 전년도 2위에서 5위로 미끄러졌다.
물론 총수 사법처리라는 불행한 일이 운동팀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총수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룹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예전보다 못했다면 성적 하락을 가져 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이대로 둘 것인가=한국 스포츠와 재벌 간 공생이 서로 간 ‘윈-윈’한다 해도 언제까지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재벌의 프로스포츠 지원은 프로단체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모기업의 지원 없어도 순수 스포츠 마케팅으로 생존해야 하는 프로단체가 생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재벌의 스포츠 지원이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논리에 빠져 재벌 총수의 부정한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데 스포츠가 이용되는 것도 없어야 한다. 따라서 차제에 프로야구단 명칭도 지금처럼 기업명을 내세우지 말고 프로축구처럼 지역명을 앞세우는 쪽으로 가는 것이 재벌을 위해 이익이 될 것이다. 기업명을 쏙 빼고 ‘대구 라이온즈’, ‘광주 타이거즈’로 불릴 때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은 재벌이 되지 않을까.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