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판결 파장] 14년 고엽제 소송, 아픔만 키웠다

입력 2013-07-13 04:59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고엽제 피해자 1만6579명이 14년간 힘겹게 끌어온 소송에서 39명을 제외하고 모두 패소했다. 수십년 동안 고통스런 삶을 이어온 피해자들의 호소는 법원의 엄격한 증거재판주의에 가로막혔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2일 파월군인 김모(70)씨 등 1만6579명이 ‘베트남전에 뿌려진 고엽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돼 후유증을 입었다’며 고엽제 제조사인 미국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2006년 당뇨병, 후두암, 비호지킨임파선암, 후두암 등 11개 질병에 대해 고엽제와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한 뒤 소송을 제기한 2만615명 중 5227명에게 1인당 600만∼4600만원씩 모두 630억7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당뇨병, 폐암, 전립선암 등이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 노출에 따른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 질병은 발생원인 등이 복잡다기하고 유전·체질 등의 선천적 요인, 음주·흡연·식생활습관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질환”이라며 “원고들의 각종 질병이 베트남전에서 살포된 고엽제 노출에 따른 것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증거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오랜 기간 치열하게 변론해 온 쌍방 당사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고엽제 피해자들의 딱한 사정만으로 판결할 수는 없었다”고 판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법원이 유일하게 인정한 염소성여드름은 일명 ‘유센코 여드름’으로 불리는 병으로,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될 경우 발병하는 특이성 질환이다. 빅토르 유센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04년 대선 당시 얼굴이 오렌지 껍질처럼 변해 파문을 일으켰고, 검사결과 그의 혈중 다이옥신 농도는 정상인의 1000배가량이었다.



대법원은 “법원이 판결에 의해 고엽제 제조회사의 책임을 일부라도 인정, 확정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착잡하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엽제 제조사인 다우케미칼은 언론발표문을 통해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고무됐으며, 파기환송심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면서도 “염소성여드름에 대한 대법원 판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남도영 강주화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