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판결 파장] “정부라도 특별법 제정해 제대로 보상해야”

입력 2013-07-12 18:24


12일 오전 9시쯤 군복 바지에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고엽제 피해자 200여명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으로 모여들었다. 내리다 그치길 반복하는 장맛비 속에 모인 그들은 14년 동안 기다려온 대법원 선고에 큰 기대를 하는 표정이었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에 파병됐다가 고엽제로 인해 폐암·심근경색 등 각종 질병을 앓게 된 피해자들은 선고가 나기 전 초조하게 법정 앞을 서성였다. 만약을 대비해 청사 방호원 20여명이 법정 안팎에 배치됐다.

오전 10시30분쯤, 판결 예정시간이 되자 피해자들 중 일부는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약 20분간 다른 사건들에 대한 선고가 진행된 후 고엽제 피해자 사건에 대한 선고가 시작됐다. 김신 대법관은 판결의 주문을 읽기 전에 “원고 측이 소송을 제기한 상태에서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 그동안 변론을 준비하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온 쌍방 당사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법관이 밝힌 판결 내용은 오랜 기간 고엽제의 후유증과 싸워온 이들의 마지막 희망과는 달랐다. 대법원은 염소성여드름 질환자 39명에 대한 제조사의 배상책임만 인정했다. 김 대법관은 “딱한 사정만으로 판결할 수는 없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밝히기도 했다.

법정 밖에서 소식을 접한 피해자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김성욱(67) 고엽제 피해자 전우회 사무총장은 “판례가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실망스럽다”며 “변호사와 추후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우산을 쓴 채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속으로 하나둘씩 흩어졌다. 일부 지방에서 올라온 피해자들은 타고 왔던 고엽제 피해자 전우회 승합차를 타고 돌아갔다. 우려했던 소란은 없었다.

고엽제 피해자 전우회(이하 전우회) 측은 판결 후 “정부의 적극적인 보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라도 특별법을 제정해서 당시 참전했던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엽제 피해로 당뇨, 심근경색 등을 앓게 됐다는 김 총장은 사법부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40대 중반부터 병마가 쳐들어와 노동력을 잃었다. 일을 못하니까 가족들로부터 소외받고 눈물 속에 살아왔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는데 사법부가 어떻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있느냐”고 격앙된 목소리를 말했다. 그는 “김 대법관이 주문을 낭독할 때 분노가 치밀어 소리를 지를 뻔했다”고도 했다. 전우회 측은 향후 대정부 투쟁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