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판결 파장] 美 역학조사마저 불인정… 피해자 고통 외면

입력 2013-07-12 18:24

대법원은 12일 고엽제의 다이옥신 성분이 염소성여드름에 대해서만 ‘인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엽제 성분이 유발한 질병이라고 입증된 것은 염소성여드름뿐이라는 의미다. 고엽제가 당뇨병 등 모두 11개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인정한 항소심과 비교하면 인과 관계를 훨씬 좁게 본 것이다. 대법원이 엄격한 증거주의에 치중해 눈에 보이는 피해와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염소성여드름은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될 경우에만 발병하고 다른 경우에는 발병되지 않는 ‘특이성’ 질환이라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다른 질병은 인과관계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단정했다. 특히 원심이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주로 인용한 미국 국립과학원의 조사보고서도 증거로 삼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국립과학원이 실시한 역학조사는 질병과 자연적 사회적 요인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규명했을 뿐이고 다이옥신과 질병과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밝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다이옥신 노출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임상 의학이나 병리학적으로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다이옥신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역학적 방법 외에는 다이옥신과 질병 간의 인과 관계를 판단할 기준이 없다고 보고, 미 국립과학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인과관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인용했다.

미국 국립과학원은 1994년부터 2년마다 10년 동안 베트남전 참전 군인을 대상으로 고엽제가 건강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보고서를 미 정부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전문가 집단이 결과를 평가하고, 기존에 발표된 역학적, 과학적 연구들을 모두 검토했다. 항소심도 이에 근거해 연조직육종암 비호지킨임파선암 호지킨병 염소성여드름 폐암 후두암 기관암 전립선암 다발성골수종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 당뇨병 등 11개 질병을 앓고 있는 5227명에 대한 손해 배상을 인정했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군인들은 1987년 미국 법원에 ‘염소성여드름만을 고엽제와 관련한 질병으로 규정한 미 고엽제 규칙이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 법원은 “보훈처가 베트남 참전 군인의 복무 피해를 보상하면서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참전군인들에 대하여 보상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며 규정 무효를 선고한 바 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강주화 전웅빈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