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역사 잊은 민족엔 미래 없다”
입력 2013-07-12 18:32
청소년들은 적게는 네댓, 많게는 열 명이 넘는 아이돌 그룹들의 이름과 얼굴을 훤히 꿰뚫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신통방통하다. 또래들과의 대화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면 웬만한 아이돌 그룹들의 신상명세는 꿰차고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완전 딴판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은 막힘없이 매치시키면서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 얼굴은 모른다. 안중근 의사(義士)에 대해 묻자 병 고치는 의사(醫師)냐고 되묻는다. 한·일 역사문제의 뇌관인 야스쿠니 신사(神社)는 ‘젠틀맨(紳士) 야스쿠니’로 둔갑한다. 6·25전쟁은 ‘육점이오전쟁’, 3·1절은 ‘삼점일절’이 되어 버린다. 얼마 전 TV 뉴스에 방송된 이 같은 보도를 보고 혀를 찬 어른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6·25가 북침으로 일어났다는 대답이 70%에 육박했다고 한다. 정말로 절반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당수가 장난으로 응답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스스로 위안을 삼아도 찜찜함이 가신 건 아니다. 사실이라면 그 자체가 충격이고, 장난이라면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그리고 인민군의 남침에 맞서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고귀한 청춘을 바친 선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반만년 우리의 역사를 알지 못해도 대학 진학하는 데 하등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이 통합교과형 출제에서 과목별 출제로 전환된 2005학년도부터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학생들의 역사 기피 현상은 시나브로 두드러지고 있다.
최초 27.7%에 이르던 국사과목 선택 비율은 18.1%(06학년도) 12.6%(07학년도) 10.5%(08·09학년도) 10.9%(10학년도) 9.5%(11학년도)로 계속 떨어지다 2012학년도에 6.7%로 바닥을 찍고 2013학년도에 7.1%로 소폭 상승했다. 정부가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공부할 내용이 광범위한 데다 문제도 어려워 학생들은 국사 선택을 꺼린다고 한다. 그나마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던 서울대마저 한국사 의무화를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사가 자칫 학교 교육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극장이나 TV에서 사극을 볼 때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중·고교 시절 꾸준히 배운 국사 덕이다. 귀화시험에는 우리말의 쓰임새와 함께 역사 문제가 비중 있게 출제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 조건으로 기초적인 역사 지식을 묻고 있는 것이다.
각계각층에서 역사교육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자 정부는 내년부터 고교의 한국사 이수단위를 현행 5단위에서 6단위로 늘릴 방침이다. 그런다고 학생들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그동안 대입제도와 교육과정의 큰 틀에서 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소극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역사 과목은 평가기준에 넣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교육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역사는 후손에게 헤아릴 수 없는 교훈을 준다. 그러기에 강제로라도 가르칠 가치가 충분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역사를 알아야 올바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