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冠帶而坐(관대이좌)

입력 2013-07-12 18:39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의관을 단정히 하고 앉아 책을 읽는 선비다. 의관과 띠를 하고 꼿꼿하게 앉는 자세를 이르는 관대이좌(冠帶而坐)다. 그렇지만 이 같은 습관은 적어도 16세기 전반까지는 일반적인 선비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암 조광조(1482∼1519)가 성균관에 입학해보니 대부분의 유생들이 옷을 벗고 마음대로 나가고 눕고 했다고 한다. 농암 이현보의 종손인 이성원 박사가 쓴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에 나온다.

정신만 집중한다면야 시장터에서 공부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누워서 책을 읽는다 해서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디 관대이좌의 자세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의관과 띠를 하고 꼿꼿하게 앉아서도 주야장천 졸 수도 있겠지만 엄격함이 주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들어올 때 반드시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오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자신의 축구 철학인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거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훈련하러 오는 것과 정장을 입고 오는 것은 마음가짐에서부터 다르다.

사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소속 선수들에게 인터뷰할 때는 반드시 정장을 입도록 하는 등 품격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그만큼 형식이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예전 예비군복을 입은 전역자들이 남들이 보든 안 보든 함부로 행동해 자주 구설에 오른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형식만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창의성이 말살된다는 단점도 있긴 하다.

어쨌든 관대이좌는 조선 선비의 전형적인 자세로 굳어져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하고 사당에 나가 절하고 물러나 서실에 앉아 책을 보다 밤이 늦은 후에야 잠에 드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었다. 몸이 불편해도 이 같은 습관을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장마와 더위가 반복되는 가운데 초복을 맞았다. 보양식도 좋겠지만 독서로 더위를 쫓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싶다. 꼭 관대이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