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 요지경] 여긴 8만원 저긴 30만원… 동물 살리려다 사람잡는 진료비 애물된 애완견

입력 2013-07-13 04:00 수정 2013-07-13 15:26


“강아지가 감기기운이 있어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주사 한 대 맞고 약만 타오는 데 18만원이 들었어요.” “주기적으로 고양이의 치석 제거를 해주고 있는데,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8만원이면 해결됐는데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30만원을 달라네요.” 11일 온라인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 ‘동물병원비’를 검색하자 불만 글이 쏟아졌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동물병원비가 너무 비싸다”고 입을 모은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 동물병원은 ‘무풍지대’=동물병원비는 왜 비쌀까. 우선 동물 진료비는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최근 일부 보험회사에서 반려동물 보험을 내놨지만 보험료에 비해 보장 내역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1999년 동물의료수가제가 폐지된 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 담합을 막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였다. 그러자 일부 병원이 수술 인건비 증가 명목 등으로 진료비를 대폭 올렸고, 소비자의 부담만 늘어났다.

수의사회가 가격 기준을 정해 고시하는 것 또한 담합으로 간주돼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동물병원비는 자연스럽게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들쑥날쑥 기준 없는 동물병원 진료비=“영수증을 보세요. 같은 검사인데도 비용이 천차만별이에요. 심지어 같은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을 때마다 비용이 달랐어요. 이러니 동물병원을 믿고 다닐 수가 있나요.” 경기도 안산에 사는 조수정(41)씨는 그동안 모아온 동물병원 영수증을 꺼내 보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씨의 고양이 ‘치로’는 지난달 18일 동물병원에서 범백혈구감소증(Feline Panleukopenia) 검사를 받았다. ‘범백’으로도 불리는 이 병은 고양이가 걸릴 경우 치사율이 70%에 달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처음 간 병원에서는 검사비용으로 3만원을 요구했다. 이어 조씨는 26일 근처 다른 동물병원을 찾아 같은 검사를 다시 신청했는데, 이곳 영수증에 찍힌 검사비는 4만6200원이었다. 치로는 이튿날 이 병원에서 검사를 한 번 더 받았다. 이 병원은 이번에는 검사비로 5만2500원을 요구했다. 같은 검사를 세 차례 받았는데 세 번 모두 비용이 다르게 청구된 것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6월부터 한 달간 전국 50개 동물병원의 영수증과 진료 내역을 수집·분석했다. 조사 결과 실제로 같은 항목이라도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이 가장 들쑥날쑥한 항목은 중성화 수술이었다. 동물의 발정기가 올 때마다 교미를 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동물주가 애완동물의 생식기능을 제거하는 중성화 수술을 선택한다.

상대적으로 수술 과정이 복잡하고 비싼 암컷 중성화 수술비는 15만∼33만원이었다. 수술비 자체만으로도 차이가 큰데 여기에 수술 전 혈액검사(2만∼6만6000원), 호흡마취(6만∼11만원), 입원비(2만2000원∼4만2000원) 등 각종 부대비용까지 더하면 총 비용은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치솟았다. 수컷 중성화 수술비도 5만원, 7만원, 15만원 등으로 다 달랐다.

동물의 기생충 감염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분변검사 비용은 병원별로 4배까지 차이가 났다. 경기도 안산의 A동물병원은 5000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 마포구의 B동물병원에서는 1만원, 강남구 C동물병원에서는 1만2000원이었다. 관악구의 D동물병원이 2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가장 기본적인 초진료도 크게 달랐다. 대부분의 동물병원이 초진료로 3000∼5000원을 받고 있었지만 안산 E동물병원은 1만5000원이었다.

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1·2차병원 여부, 반려동물의 나이와 체중, 의료장비, 주사제 종류 등 각종 변수에 따라 비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싼 의료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기본 진료들까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동물을 길에 버리는 사례도 많다. 아픈 동물을 동물병원에 맡겨둔 채 연락을 끊는 동물주도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유기동물은 9만9254만마리에 달한다.

◇직접 반려동물 주사 놓는 사람들=동물병원비가 계속 치솟자 기본적인 접종·치료는 직접 약품을 사서 처치하는 동물주가 늘고 있다. 온라인 애완동물 커뮤니티에서는 약품 사용법과 주사 놓는 법 등을 알려달라는 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충북 청주에 사는 직장인 강모(23)씨는 최근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의 정기 접종일에 동물약국을 찾았다. 강씨는 이곳에서 심장사상충약과 3차 접종 주사를 각각 1만원과 4000원에 구입했다. 강씨는 “동물병원에 가면 심장사상충약은 1만5000원, 3차 접종 주사는 3만5000원선인데 동물약국에서는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며 “직접 주사하는 법만 익히면 병원비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염리동에 있는 한 동물약국에서는 실제로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항균제, 귀진드기·피부병 치료제, 항생제, 지사제를 비롯해 각종 백신과 해독제 등을 팔고 있었다. 약국 관계자는 “누구나 직접 약국을 방문하면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다음달부터는 제약이 생길 전망이다. 동물용 의약품 남용을 막기 위해 수의사 처방전 없이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 약사법·수의사법 개정안이 오는 8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처방 대상으로 지정된 동물용 의약품은 마취제, 호르몬제, 항생제 등 97개 품목이다. 정부는 처방 대상 의약품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