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시 축출 역풍… 이집트 기독교인 “테러 공포”

입력 2013-07-11 19:01

지난 5일 새벽(현지시간) 이집트 관광 명소 룩소르에서 멀지 않은 마을 나가 하산에 한 무슬림의 사체가 발견됐다. 마을의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기독교도가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들이 지지하던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의 쿠데타로 쫓겨난 지 이틀 만이었다. 분풀이 대상을 찾던 수 백명의 성난 무슬림들은 마을 곳곳의 기독교도 집을 찾아다니며 문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마을에서 무르시 퇴진 운동을 주동했던 에밀레 나심(41)이 주 타깃이 됐다. 순식간에 나심의 집은 무슬림들로 둘러싸였고 부인과 조카, 이웃 주민 등과 함께 옥상으로 쫓겨 올라갔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여성과 아이들만 탈출시켰다. 그뿐이었다. 무슬림들은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고 조카 두 명과 이웃 한명은 그 자리에서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다른 건물 지붕으로 도망 다니던 나심은 결국 몸을 던졌고 기다리고 있던 무슬림들의 몽둥이에 숨을 거뒀다.

무르시 축출 이후 이집트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나심 등 4명 외에도 무슬림 강경파의 본거지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부 시나이 반도에서는 한 기독교 사제가 총을 맞고 숨졌다. 최근 일주일 동안 이집트 27개 주 가운데 6개 주에서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집트의 기독교인(콥트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0% 남짓으로 항상 소수였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치적 행동은 자제했다.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쫓겨난 뒤 혁명의 물결은 기독교인들을 변화시켰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콥트기독교 최고지도자인 타와드로스 2세는 공개적으로 무르시를 비난했다.

무르시 재임 시 무슬림 강경파들은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했고, 무슬림형제단 관련 매체들은 지난달 30일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선동했다. 최근 친무르시 시위와 폭동에서는 “신은 없고 알라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알라의 적이다”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집트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저녁 예배를 취소하는 등 폭력의 물결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활동가들은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마리나 자카리아(21)는 10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부모 세대는 이집트에서 떠나는 것을 해결책을 생각했지만 우리는 다르다”고 말했다. 니르바나 마무드(22)는 “너무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은 불평등에 침묵해 왔다”면서 “피 없이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