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출구전략 늦출수도” 버냉키 한마디에 코스피 53P↑

입력 2013-07-11 18:47 수정 2013-07-11 22:20


이번에도 세계 경제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금융시장이 춤을 췄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10일(현지시간) 전미경제연구소(NBER) 주최 콘퍼런스 연설에서 “금융시장 여건이 경제성장을 위협하는 수준이 되면 정책 변화를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몇 시간 뒤 열린 11일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3% 가까이 솟구쳤다. 하반기 중 양적완화를 축소하겠다던 그의 선언에 코스피지수가 2% 급락한 것은 지난달 20일, 불과 15거래일 전의 일이었다.

◇버냉키 입에 울고 웃는 금융시장=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대해 “출구전략을 급하게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이미 시장이 충분히 받아들였고, 한 단계 나아간 통화긴축(Tightening)인 금리 인상은 아직 먼 이야기임이 확인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의 매수세와 함께 투자심리가 다시 살아났다.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3.44포인트(2.93%)나 상승한 1877.60으로 장을 마쳤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며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보다 13.7원 내린 1122원에 마감됐다.

버냉키의 ‘병 주고 약 주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10일에는 “저금리를 이용한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에 대해 예의주시한다”고 언급해 유동성 파티에 대한 경각심을 형성했다. 지난 5월 22일 의회 연설에서는 9월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해 전 세계 금융시장의 하락을 초래했다. 마침내 지난달 20일에는 “하반기 중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한 뒤 내년 중 중단할 계획”이라는 폭탄선언으로 세계시장에 ‘버냉키 쇼크’를 선사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버냉키의 배신’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비밀주의 타파 효과와 함께 부작용도=버냉키는 2006년 2월 취임한 뒤 연준의 고질적 ‘비밀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1년 4월부터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가 열릴 때마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이다. 1914년 연준 출범 이후 의장이 성명서가 아닌 언론 질의응답으로 회의 결과를 직접 설명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장의 반응을 살피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버냉키의 잦은 언급에 대해 부작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버냉키가 입을 열 때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도이치은행의 조셉 라보그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똑똑하지만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연준이 여지를 남겨둔 발언을 내놔도 이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원색적인 비난도 적지 않다. ‘채권왕’ 빌 그로스 핌코 회장은 “버냉키 재임 동안 실질경제는 2.5%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없고, 금융시장은 마치 항암치료를 받는 백혈병 환자 같다”고 비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