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총 겨눴던 나라서 따뜻하게, 과거 잊고 협력 길 갔으면…”

입력 2013-07-12 04:57


한때 적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여기고 총을 겨눴던 한국. 총성이 멎은 지 60년 만에 이 땅을 찾은 6·25 참전 중국군인들은 서울의 높은 빌딩숲에 연신 탄성을 질렀다. 1951년 9월 평안북도 신의주에 주둔하며 후방 사령부 통신병으로 근무했던 량덩가오(梁登高·78)씨는 당시 이따금씩 전장에 서서 남쪽을 바라본 기억을 떠올렸다. 량씨는 “당시 계속된 포격으로 남한 쪽이 온통 불바다였던 광경이 생생히 기억난다”며 전쟁의 참혹함에 치를 떨었다.

한중문화협회와 경기도의 초청으로 6·25전쟁 참전 중국군 3명이 지난 9일 한국을 찾았다. 국민일보는 경복궁과 춘향전 관람, 쇼핑 등 이틀간 방문 일정을 동행하며 그들의 소회를 들어봤다. 이들은 60년 전 폐허였던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평화를 염원했다. 량씨는 11일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지만 이제 한·중 양국이 서로 협력해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량씨는 전쟁이 끝난 이후 북한에 머물며 군 교관으로 근무했다. 주로 난징 지역에서 북한으로 온 신병을 훈련시키다 57년 퇴역한 뒤 중국으로 돌아갔다. 량씨와 함께 한국을 찾은 라이쉐시엔(賴學賢·85)씨는 전쟁 당시 47사단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물자 수송을 담당했다. 그는 53년 중국군의 마지막 대규모 군사작전인 하계반격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에게 전쟁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천뤄비(陳若必·81·여)씨는 “전쟁을 돌이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량씨는 “미국 B-29 폭격기가 하늘에서 융단폭격을 하면 주변 지역 전체가 파괴됐다”며 “신병들이 한번에 200명이나 죽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다시 가보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라이씨는 “전혀 가보고 싶지 않다. 당시 모습은 다 사라졌을 것 같다. 북한의 폐쇄적이고 빈곤한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이씨는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와보니 모든 영역에서 발전해 인상 깊다”며 감탄했다.

사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국 땅에서 자신들로 인해 죽은 이들이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과거를 덮고 따뜻하게 맞이해준 한국에 고맙다고 했다. 천씨는 “막상 한국에 오니 과거의 역사를 뒤로 하고 반갑게 맞아 주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참전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량씨는 “16세에 참전하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당시 내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량씨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전쟁은 끝났고 한국과 중국이 우호적으로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씨 역시 “당시 북한이 미국에 침략당하면 다음 차례는 반드시 중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기 위한 참전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느 중국인 관광객처럼 한국 드라마와 화장품을 좋아했다. 경복궁 안내원이 수라간 복원 현장을 설명하면서 “이곳이 대장금이 일하던 곳입니다”라고 말하자 “대장금이 있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구나”하며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량씨는 손녀딸에게 주려고 한국 화장품도 가득 샀다.

한중문화협회 박원서 청두지회장은 “정부가 중국군 사망자 유해 송환을 결정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초청이 이뤄졌다”며 “이들은 한때 우리의 적이었지만 지금은 한 편의 역사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나 조성은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