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콘서트보다 더 후끈한 “번개맨∼” “번개맨∼”

입력 2013-07-11 18:28


공개방송 EBS ‘모여라 딩동댕’ 700회 녹화 현장

혹시 ‘번개맨’을 아시나요. 장난감 나라 조이랜드에서 악당 ‘나잘난’과 ‘더잘난’ 때문에 위험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주는 정의의 사나이랍니다. 3세부터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서는 모를 리 없는 EBS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딩동댕’의 대표 캐릭터죠. 아이가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번개맨은 지난 13년 동안 우리 곁을 한결같이 지켜왔어요. 무려 13년이라니, 번개맨이 누군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 아이돌 콘서트 저리 가라∼

10일 서울 홍지동 상명아트센터에선 ‘모여라 딩동댕’의 700회 기념 특집(9월 7일 방송) 녹화 공개방송이 열렸다. 장맛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서 번개맨을 보러 온 사람들이 2000여 명에 달했다. 아이와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서울 구로동에서는 7세 유치원 친구 46명이 단체로 왔다. ‘사랑해요 번개맨’ ‘700회 특집 축하해요’ 등 예쁜 손글씨의 하트 모양 팻말도 만들어왔다. 번개맨 외투를 걸친 깜찍한 영훈이에게 물었더니 “엄마가 만들어줬다”고 한다. 정말이지 엄마들은 못하는 게 없다.

경기도 구리에서 딸 유라(6)를 데리고 온 아빠는 회사에 하루 휴가를 냈다. 자그마치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구한 방청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공연장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었지만 유라가 “번개맨!∼ 번개맨!∼” 외치며 활짝 웃는 모습에 힘든 걸 모두 잊었다.

서울 전농동에서 온 박민수(5) 어린이는 번개맨을 무척 좋아했다. 26일부터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번개맨의 비밀 2-우리영웅 번개맨’도 보러 갈 계획이다.

7세 여동생, 5세 남동생과 온 박유빈(10) 어린이가 들려준 이야기. “남동생은 무슨 일이 생기면 번개맨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우리가 아빠한테 전화를 걸면 아빠가 번개맨 흉내를 내는데요, 이건 진짜 비밀이에요.”

이렇듯 현장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보다 더 뜨거운 함성과 열기가 넘쳐난다. 공연이 끝나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부모와 아이들의 줄이 길다. 어느 아이돌이 인증사진 못 찍었다고 대성통곡하는 팬을 뒀을까. 이날 번개맨과 사진을 못 찍은 남자 어린이는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며 안타까워했다.

# ‘모여라 딩동댕’을 만든 사람들

‘모여라 딩동댕’은 1999년 ‘딩동댕 유치원’의 토요일 특집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10월 독립 편성된 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공연했다. 공연장을 찾은 어린이와 부모 숫자만 140만명이다. 제작진은 11만㎞, 지구를 세 바퀴나 돈 거리만큼 다녔다.

이날 공개방송 공연이 끝난 뒤 프로그램 사회 격인 뚝딱이 아저씨 김종석과 번개맨 서주성, 연출을 맡은 오정석 PD와 마주했다. 서주성의 번개맨 의상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아이들 상대로 하는 공연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성인극과 차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정 표현은 다를 게 없고, 쓰는 단어만 아이들이 알아듣기 쉬운 것으로 선택해요. 관객층이 어리다는 차이만 있을 분, 연기할 때는 똑같아요.”

오히려 기쁠 때가 많다. “현장 피드백에 예민한 편인데 아이들이 ‘번개맨’을 외칠 땐 뭉클해요. 극장이 커서 관객이 많을수록 제 목소리도 커지죠.” 13년간 번개맨으로 살면서 최대한 사생활 노출을 자제해왔다. 아이들이 가진 번개맨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다.

‘모여라 딩동댕’의 최고 장점은 아이들과 현장에서 호흡하며 만드는 프로그램이란 점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의 참여를 강조하게 됐다. 번개맨 자체가 아이들이 ‘번개맨’을 외쳐주면 그 응원에 힘입어 번개 충전을 하고 힘을 내는 설정이다. ‘다다다다 달리고 쿵쿵 뛰는’ 번개 체조를 2년 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토·일요일 오전 번개 체조 할 때만큼은 아파트 층간 소음을 양해해 달라는 문구를 넣어주면 안 되겠느냐”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교육방송 EBS 프로그램이다 보니 출연료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아동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작가, 연기자, 제작진이 똘똘 뭉쳐 지금껏 올 수 있었다. 김종석은 “어린이 문화도 있다는 걸 어른들과 위정자들이 꼭 알고 관심을 쏟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오 PD는 “기회가 된다면 미주 공연 등도 하고 싶다”며 “이 콘텐츠가 한류 바람을 타고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할 수 있길 꿈꾼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