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실상] “교사 권위 깔아뭉개고 몸만 사리는 교장이 문제”

입력 2013-07-11 17:24


<하> 학폭에 개입했다 절망한 현장 교사의 고백

#1 얼마 전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 수업시간. 학생 A군이 자리를 이동하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자 판서하던 K교사(59)가 “빨리 자리에 앉아”라고 말했다. A군은 교사 쪽이 아닌 친구들 쪽을 보며 “개○○”라고 욕설을 하며 비웃었다. 발끈한 K교사가 “너 뭐라고 했어”라고 질책하자 A군은 “아무 말 안 했는데요”라며 정색했다. 어이가 없었던 K교사가 다른 학생들에게 “니들도 들었지”라고 묻자 “아무 말 못 들었어요. 선생님 좀 이상해요”라며 모두 A군을 두둔했다. A군은 이 학교에서 유명한 일진이었다.

#2 K교사의 동료인 C교사(33)는 학생들에게 이른바 ‘찐따(멍청이) 선생’으로 통한다. 학교폭력에 나섰다가 붙은 별명이다. C교사는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B군을 본보기로 삼기 위해 강제전학 혹은 퇴학시키겠다고 학생들에게 선언했다. 그러고는 B군을 데리고 교감을 만났다. 교감은 C교사를 돌려보낸 뒤 피해학생 학부모를 만나 협박 반, 설득 반으로 무마한 뒤 사건을 덮었다. B군과 친구들은 웃으며 “거봐요. 못 보내잖아요”라며 비아냥거렸다. 이후 C교사는 학교폭력에 눈을 감았다.

K교사를 최근 학교 주변 식당에서 만났다. K교사는 “학교폭력 해결이요? 엄두를 못 냅니다.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는커녕 한 인간으로서 자존심 지키기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30년 교사 경력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저서도 있다. 그의 자녀도 지난해 임용고시에 합격한 새내기 교사다. 다음은 K교사와 나눈 주요 일문일답.

-과거와 비교해 학생들을 다루기 어려워졌나.

“학생들이 영악해지고 거칠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다. 이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교사의 열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권이 바로서고 교사가 열정이 있으면 못 다룰 것도 없다.”

-왜 열정이 꺾였는가. 학교폭력에 개입 안 하신다고 들었다.

“명예퇴직을 생각할 정도로 인간적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저는 나이가 많고 깐깐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그렇게 대든다. 젊은 교사들은 처음 이런 일 겪으면 너무 당황해서 학생들과 똑같이 싸우거나 제풀에 지쳐버려 개입 안 하게 된다.”

-가해학생을 학교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그래서 위(Wee)센터 같은 외부상담 기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보내봐야 별 소용없었다. 다녀오면 오히려 ‘별 달았다’고 더 으스댄다. 또 보내보라는 투다. 자기들과 비슷한 친구들 만나서 놀다 온다고 한다. 이렇게 하려면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기간제 교사들에게 담임을 맡기는 학교가 많은데.

“기간제 담임교사가 학교폭력을 잡는 것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얘기다. 아이들이 기간제 교사 말을 들을 것 같은가. 저같이 엄한 교사의 말도 잘 듣지 않는다. 기간제 교사들은 교장, 교감에게 한번 찍히면 그걸로 교직생활 끝난다. 스스로 자존심 지키기도 버거운데 아이들과 충돌하고 교장, 교감과 맞서서 누가 학교폭력을 막으려 하겠는가. (학교폭력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교권 추락이 학교폭력을 방치하는 이유인가.

“교사의 권위는 사회와 학부모 그리고 동료교사가 세워주는 것이다. 교사를 폭행하는 학부모를 처벌하거나 학생을 체벌한다고 교권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교장, 교감이다. 학교의 관리자들이 교사의 권위를 대놓고 깔아뭉갠다. 이를 지켜본 학생들 앞에 무슨 교사의 권위가 서겠나. 교장이 학교폭력을 감추려고 하면 어렵지 않다. 피해학생 학부모만 설득하면 된다. 꼬투리를 잡아 가해학생으로 몰아가면서 합의 종용하면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경우 대부분 꼼짝 못한다.”

-교장 등이 학교폭력을 감추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부가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교장, 교감들이 스스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인식하면 소용이 없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거다. 그리고 주변 학교 교장, 교감들과 경쟁의식이 많이 작용하는 듯하다. 훌륭한 관리자들도 많다. 문제는 복불복이라는 거다. 심지어 저는 교장 중임계획서, 경영계획서를 대필해준 적도 있다. 교감의 딸이 취업하는데 필요한 자기소개서도 대신 써봤다. 저를 개인 비서처럼 부리려고 했다. 자격 미달인 교장, 교감들이 문제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교폭력 담당자 연수 만날 해봤자 소용없다. 교장·교감 모아서 300시간이고 400시간이고 철저히 연수를 시켜서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당장 눈에 띄게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교사들이 신바람 나게 교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아줘야 한다. 저는 과거에 저를 믿어주는 교장선생님과 있을 때 진짜 폭력조직 멤버도 선도해봤다. 휴일도 잊고 소년원 따라다니면서 상담했다. 그때도 잡무는 많았다. 그 학생 지금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잘 산다. 교장, 교감의 신뢰와 지지가 있으면 교사는 아무리 힘들고 박봉이어도 사명감 갖고 뛸 수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