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등장 이후… ‘방콕’ 미국인 늘어났다
입력 2013-07-11 16:59 수정 2013-07-11 19:20
여름전쟁/스탠 콕스/현실문화
에어컨이 주인공이다. 근대 산업의 총아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에어컨이 환경과 건강에 끼치는 폐해를 지적하는 내용에 그친다면 너무 빤할 것이다. 전작 ‘녹색의 유혹’ 이후 3년 넘게 에어컨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미국 환경전문가 스탠 콕스는 성큼 나아가 에어컨이 우리 삶과 문화에 미친 영향까지 파고든다.
한마디로 에어컨이 20세기 초반 등장 이래 우리 삶을 송두리째, 그것도 부정적으로 흔들어놓았다는 얘기다. 은근히 ‘에어컨 없이 살아보면 어떤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책은 미국에서 가장 더운 사막의 땅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살았던 호호캄족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푹푹 찌는 애리조나 한 복판에서 450년에서 1450년 사이에 살면서 한창때는 인구가 6만명에 달하는 번성을 누렸던 호호캄족의 생존 지혜를 전한다. 옷을 물에 적셔 출입구에 걸어놓고, 나무 그늘의 가치를 알기에 땔감으로 나무를 마구 베지 않았다는 것 등등.
관광 온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에어컨 없이도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런데 이런 질문, 어른이나 하지 아이들은 안 한다고 한다. 책의 주제와 직결되는 에피소드로, 쾌적함이라는 관념은 문화적인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이렇게 흥미를 돋우며 에어컨이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에 어떻게 뿌리를 내고 파고들었는지를 해부한다.
1928년 미국 국회의사당에 에어컨이 달리기 시작한 이래 에어컨은 미국 가정과 산업에 빠르게 보급됐다. 가전회사들은 빌트인 에어컨일 경우 더 싸게 공급하는 마케팅을 펼쳤고,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고 홍보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냉방 사랑에 푹 빠졌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팔라초베르사체 호텔을 신축하는 건설회사는 2008년 세계 최초로 해변에도 에어컨을 설치해 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해변에 미풍이 불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쯤 되면 에어컨 만능주의다.
에어컨은 인구 지형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운 지방으로의 이주를 촉진시켜 1960년대를 기점으로 남부를 이탈하는 사람보다 남부로 유입되는 사람 수가 더 많아진 것이다. 이것이 지역의 정치 성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결과를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따끔한 반성이 일게 하는 대목은 에어컨이 우리 삶의 개인주의화를 가속화시켰다는 통찰이다. 압축하자면 ‘집안에 틀어박힌 미국’이다.
에어컨이 가져다주는 쾌적함은 가뜩이나 공동체보다 가정과 개인에 집중하는 미국인을 더욱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2007년 미국 가정이 사용한 전체 전기의 20%가 에어컨 가동에 들어갔다. 야외 산책은 사라졌다. 우연한 정전으로 인해서야 여름철 해질녘의 산보가 주는 즐거움을 깨닫는 에피소드는 씁쓸하다. 이를 대한민국의 2013년 여름 풍경에 대입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나 혹시 에어컨 중독이 아닐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씩 에어컨을 끄고 무더위에 적응해보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작심한다면 이는 저자가 이 책을 쓴 보람일 것이다. 저자는 스물한 살 때 에어컨과 결별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추선영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