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짧은 만남 통해 친구 되려면

입력 2013-07-11 17:57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는 자세다”

사람을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자기 입장에서 호불호를 가리고 이해득실을 따진다. 한쪽에서 능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을 다른 쪽에서는 능력이 없다고 깎아내린다. 조직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동료가 동료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속성에서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도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의 인물평은 그 어떤 사람의 평가보다도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는 인사로 이어지고, 특정 보직에 앉은 이들이 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국민이 비슷한 논조로 비판한 이들이 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이다. 이들을 상대로 제기된 부적절한 의혹은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현 정부 들어 최악인 사례는 첫 여성 대통령의 1호 인사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당선인 수석대변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을 거치면서 언론과 충돌한 윤 전 대변인은 급기야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성추행을 자행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을 잃게 한 참사였다.

외국 정치인을 보는 박 대통령의 수준은 얼마나 될까. 바둑으로 치면 9단급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관계를 보면 이런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새누리당) 대표 시절인 2005년 시진핑 중국 저장성 공산당 서기를 만났다. 당시 지방 일정까지 미룬 박 대표는 2시간 동안 시 서기를 면담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한·중 정상회담 때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을 오랜 친구라고 지칭한 것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그야말로 친구 같은 사이다. 박 대통령은 2000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 메르켈 기독민주당 대표를 면담한 것을 시작으로 세 차례 만났다. 메르켈 총리는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를 기원하는 서한을 보냈고, 대선 다음날 승리를 축하하는 전화도 걸었다. 짧은 만남을 통해 상대방을 친구처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역량이다.

과거 메르켈 의원을 면담한 민주당 의원들의 언행은 박 대통령의 사례와 사뭇 달랐다. 독일 유학 시절 통역사로 일한 지인이 회고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여름 휴가철에 민주당 의원 2명이 독일을 방문했다. 거물 정치인과 면담하기를 원했지만 대부분 휴가를 떠난 뒤여서 ‘평범한’ 메르켈 의원을 만나게 된 것이다.

화제가 독일통일 문제로 이어지자 메르켈 의원은 경험담을 곁들이며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대화에 임했다. 분단국가인 한국 의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연히 통역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충 통역하라”고 종용했다. 메르켈 의원이 길게 설명하는데 통역을 짧게 할 수도 없고 아주 난감했다. 그 2명 가운데 한 명은 야당 중진으로 지금도 배지를 달고 있다고 했다.

당시 메르켈 의원이 한국말을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표정이나 분위기로 봐서 민주당 의원들의 됨됨이는 간파했을 것이다. 동식물도 어떤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사람이, 그것도 정치인이, 온갖 난관을 뚫고 총리에 오른 메르켈이 빨리 끝내라고 독촉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메르켈 총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 못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으리라.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손학규 김두관 상임고문이 각각 지난 1월과 3월 독일로 떠났다. 이들은 현지에서 독일통일, 사회복지, 교육제도, 노동문제 등을 파고들었다. 모쪼록 두 상임고문이 주요 현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독일정치 기대주들과의 교감을 확대하기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는 자세다. 서로 신뢰감이 싹트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