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佛→英→獨’ 정원의 전파경로 따라 걷는 산책길

입력 2013-07-11 17:35


유럽, 정원을 거닐다/정기호 外 4명/글항아리

올여름 휴가, 혹시 가족이나 친구와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나요? 유럽이 처음은 아니어서 로마의 바티칸,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같은 상투적 코스 말고 뭔가 새로운 게 없느냐고요? 이건 어떤가요. 유럽 정원 기행. 이 책, ‘유럽, 정원을 거닐다’는 그런 여행을 위한 안내서론 제격인 것 같아요.

정기호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가 기획한 이 책의 콘셉트도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정원’이거든요. 각각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정원·조경·도시학 등을 전공한 연구자 4명을 만나 대담하는 형식으로 꾸몄어요. 기획이 신선해 우선 눈길을 끌더군요. 읽다보면 그 정원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드는데, 전문가들의 내공이 바닥에 흐르고 있어 인문서를 읽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 유럽 각국 정원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인문서입니다. 유럽 정원의 발상지 로마를 품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프랑스 영국 독일 순으로 이어지며 각국 정원의 미학을 다양한 실례와 역사적 사건, 인물 등을 통해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국가 순은 유럽 정원 문화가 전파·수용된 순서이기도 하지요.

이들 전문가가 전하는 유럽 정원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유럽의 정원은 멀리 로마 황제의 정원이나 폼페이 발굴 유적에서 나타나지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정원은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일원에서 등장한 빌라 정원에서 비롯됩니다. ‘빌라 란테’ ‘빌라 파르네세’ ‘빌라 알도브란디니’는 르네상스 3대 정원으로 꼽히는데, 외양에서는 차이가 나 눈의 호사를 줍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은 이후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 영국 독일에 영향을 끼치며 유럽 정원 양식의 바탕이 됩니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꽃핀 프랑스의 바로크식 정원은 ‘베르사유 궁원’이 대표적입니다. 종이 위에 자와 컴퍼스를 이용해 선을 그은 것처럼 광활한 평지 위에 대칭성을 살려 길을 내고 식재했지요. 대단히 웅장하고 남성적인 힘이 풍겨 절대왕정 시대 강력했던 왕의 파워를 정원 양식에 담아낸 것이지요. 망원경 효과처럼, 멀리 떨어진 공간을 가까이 있는 듯 보이게 하는 공간 구성, 긴 원근법 아래 배치된 공간들과 규칙적인 질서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바로크 정원 예술은 기하학, 광학, 토목기술 같은 근대 학문 발달의 결과라고도 하네요.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얼핏 평범해 보여 실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이탈리아에 비해 정원 문화가 뒤떨어진 시기의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기하학적인 선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풍경식 정원을 만든 영국인의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면 달리 보일 것입니다. 풍경식 정원에는 또 기독교 철학이 배어 있지요. 신이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후 ‘경작하라(Cultivate)’라는 의무를 주면서 동산을 가꾸는 건 인간의 일상이 됐지요. 그래서 영국에서는 일상과 밀접한 키친 정원이나 허브 정원이 발달했다는군요.

독일은 유럽 문명사에서 가장 늦게 합류합니다. 독일은 프랑스를 모방하고 싶었지만 지리적·경제적 여건이 달라서 자기식의 바로크풍을 발전시켰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일품인 하노버의 ‘헤렌하우젠 궁원’을 꼽을 수 있지요. 프로이센 왕국 시대에 건설된 이른바 ‘포츠담과 베를린의 궁전과 궁원’은 도시 녹지의 원조로 평가받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들은 정원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측근의 정원이 탐나서 빼앗았던 영국의 헨리 8세 같은 유명한 인물도 나오지만, 19세기 베를린과 포츠담의 녹지 체계 기틀을 잡은 프로이센 궁정 정원사 레네는 정원사(史)에서나 만날 수 있기에 신선합니다. 궁원 재조성 작업에 참여한 그가 프로이센 왕국의 번영과 쇠퇴 흔적을 담은 ‘샬로텐부르크 궁원’에서 레네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전문가들의 어투는 아주 친절해 마치 그들의 가이드를 받아서 격조 있는 유럽 정원 투어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영국 편을 쓴 이준규 영국 에식스대학교 리틀 디자인스쿨 강사는 영국 정원에서 맛본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 심플 가든 투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네요.

그런 마음이 책 곳곳에서 전해집니다. 해당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전문가들답게 여행 팁도 쏠쏠합니다. 프랑스에서 빙센 숲은 좋긴 하지만 너무 넓어 쉽게 지칠 수 있으니 차라리 잘 알려지지 않은 로댕미술관의 부속 정원을 가보라, 베르사유 궁에 가거든 운하에서 배를 타봐야 정원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여행안내책자에선 건질 수 없는 정보지요.

아, 이번 휴가 때는 일이 밀려 ‘방콕’할 것 같은데 그런 책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요? 나라별 정원을 다양한 컷으로 담은 풍부한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와유(臥遊)’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듯합니다. 어때요, 책 속으로 유럽 정원 산책을 떠나볼까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