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실상] “그냥, 재미로 때려… 선생님은 하지말라고 말만해요”
입력 2013-07-10 19:24
<중> 보호처분 가해학생이 말하는 ‘이유없는 폭력’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쉬는 시간에 꼬투리 잡아 무작정 때렸어요. 한번 때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저를 말리지 못합니다.” 학교폭력 피해학부모들은 대개 가해학생을 마주하면 “도대체 왜”라고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하게도 “그냥” 혹은 “재미로”가 대부분이다. 수년 동안 주변 또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했던 S군(16)도 비슷했다.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 죄의식 같은 감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뚜렷한 폭행의 이유나 분노의 원인을 설명하기에도 미숙해 보였다. “그냥 찌질해서(못나고 약하다는 의미의 속어) 때렸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S군을 담당하는 상담교사는 애정결핍이 도덕성·죄의식 결여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부모가 이혼하고 각기 다른 가정을 꾸리면서 S군은 혼자 생활하게 됐고, 이후 학교와 주변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반사회적 성격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학교폭력과 휴대전화 절도로 법원에서 6개월 보호처분을 받아 서울의 한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S군과 최근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때렸는가. ‘빵셔틀’ 같은 심부름도 시켰나.
“셀 수 없이 많아요. 찌질한 애들은 다 때렸어요. 한두 명이 아니라 찌질한 애들은 전부요. 빵셔틀은 아니고 사소한 심부름, 귀찮은 일은 애들 다 시켰어요. 비서처럼 수족처럼 부려먹어도 말 못해요.”
-때리는 이유가 뭔가. 언제부터 때렸나.
“그냥 수업 듣고 있으면 화나고 짜증나요. 공부하는 애들을 보면 때리고 싶어져요. 쉬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가서 ‘툭툭’ 치고 건드리다가 싸가지 없이 굴면 두들겨 패요. 그러면 애들이 꼼짝 못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처음 때린 건 기억 잘 안 나요. 중1 때 화가 나서 싸웠고 제가 이겼어요. 그 이후에 지금 친구들이 생겼어요. 함께 때리고 다녔어요.”
-선생님이나 맞은 친구 부모님에게 혼난 적은.
“이번 말고는 없어요. 저는 한 아이만 집중적으로 때리지 않아요. 그리고 아주 심하게 하지 않으면 애들이 말 안 해요. 티 안 나게 때릴 수 있어요. 친구들도 있어요.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일렀다가 왕따돼요. 우리(가해·피해학생)는 매일 붙어 있어요. 우리가 왕따시키면 다른 애들도 그렇게 해야 해요. 선생님들은 하지 말라고만 하시고 적극적으로 안 나서요. 나라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같아요.”
-손발이 어른만큼 크다. 때리고 난 뒤 미안하지 않았나.
“오히려 후련했어요. 수업시간에 받은 울화통이 풀리는 느낌이에요.”
-어른들이 어떻게 하면 때리지 않을까.
“제발 수업 좀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너무너무 답답해서 미칠 거 같아요. 저는 축구하는 거 좋아해요. 운동부 될 실력은 아니지만 축구만 했으면 좋겠어요.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 만화도 좋아해요. 만화책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요.”
-축구·만화 관련해서 선생님들과 진로상담 해본 적은.
“없어요. 선생님들은 학교폭력 설문할 때만 제게 관심을 가져요.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하니까 담임선생님과 얘기도 자주 했지만 중학교 올라와서 공부 안 하니까 선생님들이 그냥 내버려 두더라고요.”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경찰이 수사한다면 어떨까.
“퇴학돼서 학교 나가는 건 좀 그래요. 학교는 마치고 싶어요. 중졸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만약에 그렇게(엄한 처벌) 된다면 아이들 못 건드리고 (폭행을) 그만둘 거 같아요.”
-혼자 살았다고 들었다. 생활비는.
“아버지가 가끔 오셔서 용돈 주세요. 1년에 4∼5번이요. 생활비나 PC방비가 없을 때는 집에 있는 걸레 같은 옷을 애들에게 비싸게 팔았어요. 그냥 빌리기도 했어요. 물론 갚지는 않아요. 그래도 부족해서 휴대전화 훔치고 다니다 잡혔어요.”
-아버지와 (이복)동생이 가끔 찾아온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연락이 안 되고… 가족에 대한 감정은.
“걔(동생) 짜증나요. 공부도 잘한대요. 원망스러워요. 그래도 동생에게 잘못 없는 것은 알아요. 그래도 그 아이 보면 화가 나요. 어머니는 몰라요. 그냥 얘기하기 싫어요(격한 반응).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사신다고만 아버지에게 들었어요.”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