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강제징용 日기업, 피해자에 배상하라” 첫 판결

입력 2013-07-10 19:18 수정 2013-07-10 23:21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를 배상하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9부(부장판사 윤성근)는 10일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91)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5월 “일본 재판소가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한 것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 하에 내린 판결로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1·2심 판단을 뒤집은 뒤 나온 첫 판결이다. 여씨는 “오늘 선고가 있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과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여씨 등은 1941∼43년 일본 오사카제철소 등에 동원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고, 상시적인 감시와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여씨 등 일부 피해자들은 97년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씨 등은 2005년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액 최소 1억원=재판부는 신일본제철이 여씨 등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이 최소한 1억원 이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여씨 등은 강제동원으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으며 교육의 기회나 직업선택의 자유도 박탈당한 채 오로지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강제적인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침해행위의 불법성과 기간, 고의성,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임을 부정한 태도 등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현재 부산고법에서 심리 중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사 상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소송도 잇달아 제기될 전망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부터 신청된 피해자 수는 22만8000여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생존자는 2만5091명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망한 피해자라 하더라도 유족들이 대신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실제 배상 가능성은?=판결이 확정되면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우리나라에 있는 신일본제철 재산의 강제집행 등을 통해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신일본제철은 포스코 지분의 5%(1조원대)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피해자 측 김미경 변호사는 “강제집행 절차를 밟기 전에 신일본제철이 먼저 배상을 이행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은 배상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가압류나 경매·추심 등의 강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일본제철이 판결에 불복하면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일본에 있는 신일본제철 재산으로 보상받으려면 절차가 더 복잡해진다. 이 경우 일본 법원에 판결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이를 일본 법원이 받아들이면 일본 내 재산에 대해서도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재산이 없는 다른 전범기업에 대해서도 이런 절차를 따라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일본 법원의 판결을 부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본 법원이 승인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