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구일] 공공의료기관의 역할

입력 2013-07-10 19:03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한 국정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진주의료원 사태의 핵심인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시 얘기하면 진주의료원의 폐업이 ‘공공의료’의 후퇴인가 아닌가에 대한 것이다.

건강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장의 교과서인 ‘베버리지 보고서’(1941)를 토대로 시작된 영국의 NHS 의료제도를 보면 ‘의료에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녹아 있다. 그런데 구분해야 할 것은 공중보건(public health)과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이다.

공중보건은 전염병 예방을 통해 일반 국민(공중)의 건강 보호라는 외부 효과를 가져오는 공공재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19세기부터 확립된 개념이다. 그러나 공공의료란 개념은 영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용어다. 의료제도 및 의료문화 측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일본에도 공공의료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없다. 공공의료를 ‘콩글리시’로 표기한 ‘Public medical care’란 단어도 서양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의료서비스는 경제학적으로는 경제재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면 다른 환자는 대기해야 하는 경합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념적 개념이 포함되면서 필수의료 서비스에 대해 영국 캐나다 등은 국가가 조세로 의료서비스를 보장하고 있고 독일 일본 등은 사회보험으로 법률에 의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7년 사회보험 방식에 의한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전 국민은 법률에 의해 강제적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건강보험에 따른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을 강제로 지정해 국민들이 의료를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고 있다. 즉 조세로 국영의료기관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나라나 사회보험으로 법률에 의해 강제로 지정한 민간의료기관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 모두 국민에게 ‘공공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주의료원 같이 공공기관이 설립한 공공의료기관이나 민간의료기관 모두 공공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 보건의료노조에서 공공의료기관이 의료를 제공하면 공공의료이고 민간의료기관이 하는 것을 민간의료라고 주장하는 것은 ‘건강보험의료기관의 강제지정제’와 ‘건강보험료의 강제징수’라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개념적 근간을 흔드는 모순된 발언이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이 폐업했다고 해서 공공의료가 후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운영되는 의료기관은 모두 공공의료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이 경남의 의료급여 환자를 0.5% 진료한 것도 당연한 결과다. 나머지 99.5% 의료급여환자는 민간의료기관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료체계가 우리나라에서는 작동되기 때문이다. 진주의료원 문제는 공공의료가 아닌 ‘공공의료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의 문제이다.

공공의료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인 만큼 민간의료기관이 하지 못하는 공공의료기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한 역할 정립이 먼저이고 그 후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수익을 얼마만큼 포기하고 세금으로 얼마나 용인해 줄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공공의료의 후퇴만을 외친다면 세금이라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연명하는 공공의료기관이 될 것이 자명하다.

임구일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