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기록을 찾아서] (4) 코마네치

입력 2013-07-10 18:46


완벽했던 ‘체조요정’ 10점 만점 무려 7회

전광판 숫자는 1.00.

1976년 7월 18일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체조 이단평행봉 예선을 마친 소녀는 당황했다. 그리고 중계진과 관중석은 크게 술렁거렸다. 이때 심판 가운데 한 명이 일어나 손가락 10개를 쫙 폈다. 잠시 뒤 경기장 안이 떠나갈 정도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14살의 나디아 코마네치가 경기를 마쳤을 때 심판들은 “완벽하다”는데 동의했다. 당시 기준으로 코마네치의 퍼포먼스는 초고난도 기술로 이루어졌고, 그 수행은 완벽했다. 문제는 점수였다. 당시만 해도 전광판은 10.00을 표시할 수 없었다. 기계체조에서 만점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최대 9.99까지 나오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코마네치는 올림픽 직전 아메리칸컵 대회에서 체조 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받으며 이미 만점을 예고했다.

코마네치는 이날 경기 이후 다른 종목의 예선과 본선을 거치는 동안 무려 6차례의 만점을 더 기록하며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당시 시사잡지 타임이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는 찬사를 보내는 등 전세계가 루마니아 출신의 이 소녀에게 매료됐다. 그리고 코마네치와 함께 체조도 역사상 최고의 인기와 기술적 발전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코마네치 이후 전세계적으로 선수 연령이 낮아져 아동 학대에 대한 논란이 일자 국제체조연맹은 81년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최저 연령을 14세에서 15세로 올렸다. 실제로 코마네치는 6살 때 코치 벨라 카롤리에게 발탁된 이후 가혹할 정도로 철저한 식이요법과 훈련을 받은 탓에 키가 153㎝에 그쳤다. 이후 국제체조연맹은 98년 또다시 최저 연령을 16세로 올렸다. 그리고 코마네치 이후 완벽의 상징으로 통하던 10점 만점이 남발되자 2006년부터 채점 방식을 기록경기로 바꿨다.

코마네치는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급격히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모의 이혼과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독재 정권의 특별관리 및 체제 선전활동 등으로 인해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카롤리 코치와 다시 호흡을 맞추면서 기량을 회복, 1980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차우세스쿠의 망나니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후 89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코마네치는 한동안 좌절을 겪었다. 그의 망명을 도운 사기꾼 때문에 싸구려 행사를 돌아야 했고, 번 돈은 갈취 당했다. 그리고 미국 언론이 그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을 보도하면서 이미지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그보다 먼저 미국으로 망명한 카롤리 코치를 비롯해 체조계 인사들이 그를 사기꾼으로부터 빼내면서 비로소 안식을 얻게 됐다. 특히 1984 LA 올림픽 체조 2관왕 출신인 미국의 체조 스타 바트 코너는 그가 체조를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왔다. 96년 코너와 결혼한 그는 현재 남편과 함께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체조와 관련된 각종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뿐만 아니라 자선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