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오종석] 청와대 해바라기

입력 2013-07-10 18:30 수정 2013-07-10 19:47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 이사장 임기는 끝나 가는데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건 월권이고 무법천지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말이 되느냐.”

신용보증기금(신보) 고위인사가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 고위인사는 “지금 신보의 모든 업무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신보의 업무 올스톱은 벌써 한 달째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이사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개최하라고 했을 때만 해도 이번에는 제대로 이사장 인사가 이뤄지는 듯했다. 임추위는 지난달 12일 첫 회의를 개최하고 다음날인 13일부터 신문공고를 내기로 했다. 그런데 신문공고를 내기 직전 금융위에서 다급히 ‘올스톱하라’고 연락이 왔다. 금융위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모든 걸 보류하라고 한다. 우리도 잘 모른다”고만 말했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청와대가 공공기관 기관장 등 인사를 올스톱하라고 지시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이후 금융위에서는 어떤 얘기도 없다고 한다. 안택수 이사장의 임기가 오는 17일 끝나지만 금융위는 아직도 나 몰라라 한다. 임추위 개최와 신문공고, 후보 접수와 면접 등을 감안하면 새 이사장 선임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2주일 정도 소요된다. 이미 임기 내 새 이사장을 선임하기는 틀렸다.

말 한마디에 인사 올스톱

이사장뿐만이 아니다. 신보에서는 전무이사와 감사도 임기가 끝났지만 계속 근무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무는 지난 5월, 감사는 지난 4월 이미 임기가 끝났다. 전무는 이사장이, 감사는 임추위에서 새 이사장을 추천한 뒤에야 추천할 수 있다.

안택수 이사장은 참 관운이 대단한 사람이다. 2008년 7월 3년 임기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2011년 7월 1년 연임, 그리고 2012년 7월엔 짐을 싸고 송별회까지 했다가 재연임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재연임은 희한한 과정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6월 임추위는 금융위 지시에 따라 새 이사장 후보를 선정해 3명을 추천했다. 금융위가 임추위에 새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했다는 것은 이사장 교체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금융위는 당시 정치적 논리로 후보로 추천된 3명을 무시하고 안 이사장을 재연임시켰다. 임추위를 통해 기관장을 교체할 수 있지만 기관장 제청권을 가진 금융위원장이나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연임을 결정할 수 있어 법 위반은 아니라는 게 금융위 설명이었다. 안 이사장은 이명박정부 5년에 현 정부 들어서까지도 임기를 넘기며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공기업 업무 제대로 될 리 만무

이처럼 인사 파행이 이어지는데 업무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임원진은 물론 일반 직원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신보는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주관하는 금융 공기업이다. 기술력은 있지만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대출을 받으려면 신보의 신용보증서가 필요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강조한 중소기업 살리기나 창조경제의 기초를 위해서도 업무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곳이다.

이사장이 한 달째 공석인 한국거래소 등 일부 다른 공기업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청와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신세다. 그러는 사이 관련 공공기관은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손을 놓고 있다.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내 임추위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내용도 없는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현재 중단돼 있는 공공기관 임추위부터 하루빨리 재개하라는 목소리가 많다.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는 신보 관계자의 말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오종석 경제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