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대운하 포기”… 뒤에선 계속 삽질

입력 2013-07-10 18:21 수정 2013-07-10 15:32


청와대가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를 계기로 이명박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것은 향후 명백하게 드러나는 전 정권의 잘못에 대해서는 더 이상 좌시하거나, 수비적으로 대처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된다. 전 정권의 핵심사업을 직접 겨냥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정국 핵으로 등장=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10일 청와대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 발표 결과가 사실일 것을 전제로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명시해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공식 입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4대강 사업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점검해 앞으로 예산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같은 새누리당 출신 정부인데다, 전 정권과의 의도적인 차별화에 부정적이었던 박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이명박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다. 박 대통령도 지난달 11일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와 전직 대통령 불법자금 추징금 미수와 관련해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거론했다. 하지만 전 정부 실정(失政)을 직접 질타했다기보다는 현 정부에 책임을 묻는 여론에 ‘선긋기’를 한 측면이 컸다.

하지만 새 정부는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이 커지며 전 정부에서 이어진 이슈들로 계속 곤혹을 겪자, 이번 감사 결과를 기점으로 과거 정부 잘못에 적극 대응해 ‘확실히 털고 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이명박정권 인사들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강력 반발했다. 특히 당시 대통령실이 대운하 재추진 가능성에 대비해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라고 요청했다는 대목을 문제 삼았다. 근거가 부족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권력맞춤형 정치 감사’로 보고 있다. 야당은 “4대강 사업은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라며 국정조사를 열어 관련자들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4대강 불법비리 진상 조사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거짓말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관련 비리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며 전 정부에서 국회에 출석해 사업에 대해 증언한 당시 국무총리, 국토해양부 장관, 환경부 장관, 수자원공사 사장 등을 위증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덧붙였다.

◇감사원, “대운하 건설 염두에 뒀다”=감사원에 따르면 이명박정부는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에도 추후 대운하 건설을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 계획을 세웠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6월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남한강과 금강, 낙동강을 연결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해상 물동 루트를 만들겠다는 게 사업의 요지였는데,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구상을 취소했다.

국토부는 2008년 12월 4대강 종합정비방안을 발표한 뒤 최종 사업 계획을 수립하면서 “추후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른 운하 재추진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실 요청에 따라 당초 정비방안과 달리 준설·보 설치규모를 운하 건설에 맞춰 대폭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낙동강 최소수심 역시 6m로 대운하 방안의 최소수심 6.1m와 비슷하게 설정했다. 이 결과 유지관리 비용 증가, 수질관리 곤란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강 1차 턴키공사 담합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2009년 10월 건설사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뒤 2011년 2월 심사보고서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1년 넘게 방치하다 이듬해 5월에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전원회의에서는 12개 건설사에 156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6개사를 고발한다는 사무처 의견을 묵살한 채 고발 없이 8개사에 과징금 1115억원만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회의 과정은 회의록에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노대래 공정위원장과 서승환 국토부 장관에 대해 담합이 의심되는 턴키공사 16건을 조사하고 4대강 사업의 목표와 유지관리방안을 명확하게 설정하라고 각각 통보했다.

유성열 정부경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