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목사 논문서 주장… “제주, 1904년에 이미 자생적 신앙공동체 있었다”

입력 2013-07-10 17:59


제주 지역의 기독교 복음 전래가 기존의 학설보다 4년 정도 앞서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정환(미주장로회신학대 한국사무소·신학박사) 목사는 지난 6일 제주 성안교회에서 열린 한국크리스천기자협회 수련회 특강에서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박 목사는 ‘초기 제주도 개신교 형성사’를 주제로 한 논문에서 “1904년부터 제주도에서는 이미 자생적 기독교 신앙공동체 활동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한국교회 최초의 제주도 선교사인 이기풍(1865∼1942) 목사가 1908년 제주도에 처음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논문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자생적 신앙공동체는 캐나다출신 의료선교사 에비슨(Oliver R. Avison·1860∼1956) 박사의 회고록에 등장한 김재원(사진)에서 비롯됐다.

제주 출신인 김재원은 1903년쯤 폐질환의 일종인 농흉을 치료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을 찾아갔다. 오른쪽 늑골 전부를 제거하는 대수술에 이어 2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제주로 돌아간 뒤 친구들에게 기독교 신자가 됐다고 고백했다.

김재원은 제중원에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됐을까. 한국 최초의 신앙인으로 꼽히는 서상륜(1848∼1926)을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박 목사는 “서상륜의 경우, 1901년 6월부터 1903년 말까지 제중원에서 전도자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면서 “김재원은 그로부터 신앙의 삶과 전도자의 자세에 대해 배웠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김재원은 제주에서 매서인(賣書人·성경을 판매하며 전도하는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전도를 할 때마다 웃옷을 들어 올려 움푹 파인 오른쪽 복부의 수술 자국을 보여주면서 죽다가 살아난 자신의 삶을 간증했다.

김재원에 이어 이기풍 선교사가 입도하기 한해 전인 1907년에는 금성리 지역에서 조봉호(1884∼1920·항일 운동가)를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가 형성돼 교육과 여성 운동 중심의 사회적 선교활동도 펼쳤다.

박 목사는 “1908년부터 시작된 이기풍 선교사의 사역에서는 영혼 구원에 초점을 둔 복음전도와 근대화를 위한 교육과 의료 등 사회적 선교 활동이 복합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이는 김재원과 조봉호 등 기존 신앙공동체 구성원들과 협력하고 동역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