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고’ 김용화 감독 “쉴틈없이 정말 재미있는 오락 영화 만들고 싶었지요”

입력 2013-07-10 17:17


“영화 개봉하면 몰래 극장에 가서 뒷자리에 앉아요. 관객의 반응을 보려는 거죠. 이때쯤 웃겠다 싶으면 혼자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하지요. ‘5, 4, 3, 2, 1’ 그리고 객석에서 빵 터지면 그 순간 환희는 어디 비할 데가 없지요.” 올 여름, 한국영화 ‘미스터 고’를 보러 갔다가 극장에서 이 남자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김용화(42) 감독이다. “모든 열정을 다해 작품을 만들고, 관객의 반응이 좋으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지요.” 한국영화 최초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스터 고’의 김 감독을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쉬운 길을 가지 않는 남자

이 남자, 정말 끝 모를 사람이다. ‘미녀는 괴로워’(2006년·관객 662만명)에서 ‘예쁜’ 김아중을 200㎏의 거구로 만들더니 ‘국가대표’(2009년·848만명)에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하늘을 나는 스키점프를 담았다. 이번엔 CG로 만든 야구하는 고릴라다. 아시아 최초의 입체 3D 디지털 캐릭터다. 그는 왜 새로운 길만 가는가.

‘국가대표’ 끝난 후 슬럼프가 왔다. ‘이거 얻으려고 이토록 고생한 건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전작들이 웃기고 울리는 드라마에 치중했다면 이번엔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는 “쉴 틈 없이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때 ‘미스터 고’를 만났다”고 말했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제7구단’(1985년)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영화는 중국 서커스단에 있던 고릴라 ‘링링’이 한국 프로야구단에 정식 데뷔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이 영화, 기술력 하나는 끝내준다. CG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봐도 고릴라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자연스럽다. “기술을 안 보이게 하는 게 기술이죠. 기술이 보이면 그건 벌써 실패지요.”

기술력, 한번도 안 해본 일이었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경기도 파주에 ‘덱스터스튜디오’를 세웠다. “걷지도 못하는 친구를 날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모든 게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CG 캐릭터를 실사영화에 집어넣는 것은 특수효과 기술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죠.”

고릴라가 그라운드에서 홈런을 치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을까. 먼저 고릴라 대역 배우가 연기를 한다. 배우들은 고릴라의 연기와 동선을 파악한다. 그리고 고릴라 역 배우가 사라지면 빈 자리에 마치 고릴라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그렇게 찍은 필름에 기술력으로 만든 가상의 고릴라를 합성한다. “재야의 고수가 모여 하나하나 공부하며 공들여 만들었지요. 그 결과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성과를 이뤘습니다. 기술력의 힘은 열정이지요. 안 해서 못하는 것이지 못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릴라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하지만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그는 “한 번도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스키점프이건, 야구이건 드라마틱한 순간이 있으면 내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지요. 그냥 유쾌하고 통렬할 정도로 즐겁고 밝은 영화로 봐줬으면 합니다.”

이 영화에는 메이저리거 류현진·추신수,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가 특별출연해 큰 웃음을 준다. 세 명 모두 감독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출연하게 됐다. 류현진과 추신수는 개런티를 전혀 받지 않았다.

# 코폴라의 사진 보고 영화감독 꿈꿔

강원도 춘천고 재학 시절, 학교 근처 미군부대에서 친구들이 가져온 잡지 중에 영화 잡지가 있었다. 무심코 펼쳐들었는데 ‘지옥의 묵시록’의 미국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사진이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감독이 이 전쟁영화를 찍을 때 공습기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은 영화감독이겠구나 싶었죠.”

김 감독은 고교 시절 운동을 했다. 성적도 좋았다. 학교에서는 서울대 체대를 보내려던 참이었다. “고3 때 선생님께 연극영화과 가서 영화감독 되겠다고 했더니 ‘멘붕’이 되셨죠.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아버지는 풍류에 능한 분이었다. “어릴 적 ‘주말의 명화’를 아버지와 같이 봤어요. 아버지는 슬픈 영화가 나오면 늘 눈물을 흘리셨죠. 50번도 더 본 영화인데 볼 때마다 그러셨어요. 제가 감독이 되겠다고 했을 때 지지해주셨는데 지금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부모님은 감독이 대학 시절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몰아치는 재미가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다. 거기에 덤으로 감독의 메시지까지 관객이 가져가면 더 좋겠지만”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일까. “결국 인간도 동물이라는 거요. 어쩌면 동물보다 조금 못할 수도 있는….”

순제작비 230억원이 든 대작 ‘미스터 고’. 그 가운데 50억원은 중국 3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화이브라더스가 투자했다. 17일 한국 개봉을 시작으로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대규모로 개봉된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