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동희 (15·끝) 아버지·두 오빠 순교 증언하는 삶… 주님, 감사합니다

입력 2013-07-10 17:21


안군은 군에서도 교회 일을 맡아 할 정도로 신앙이 투철했지만, 가는 곳마다 주변의 호기심과 입방아가 이어졌다. 평생을 그런 그늘에서 살았으니 어찌 생각해 보면 가여운 사람이다. 나중에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며 말년을 보냈다.

나도 심각한 신앙의 갈등에 빠졌지만, 큰오빠가 죽기 전 내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독려해준 덕분에 매주 반주를 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를 빠질 수 없었다. 사실 피아노 덕분에 남은 우리 가족은 큰 어려움 없이 학창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도 피아노 과외로 학비를 벌었고, 두 여동생이 모두 피아노를 전공해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교회에서 겉시늉으로만 찬송가 반주를 하고는 마지못해 설교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목사님 말씀이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누가복음 12장 20절의 말씀이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아,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오빠도 아버지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주님, 저를 용서하시고 저를 천국에 받아주십시오.’ 작은 기도를 드리는 그 순간 내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날 이후로 죽음의 공포와 신앙의 갈등이 조금씩 사라졌다.

갈등이 사라지면서 나의 소명도 깨달았다. 그것은 오빠들과 아버지의 순교를 증언하는 일이었다. 오래 전에 안용준 목사님께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쓰셨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 안타까웠다. 영화는 더더욱 동떨어져 있었다. 주변 분들의 권고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제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라는 책을 1994년에 펴냈다. 책 내용을 계속 보완해 새로 찍어내고 있고, 지난해에는 책을 바탕으로 ‘오페라 손양원’도 만들어졌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국민일보에 실은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지 못한 사연과 아버지의 설교와 기도, 주변 분들이 증언을 책에는 소상히 정리해 놓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안군, 안재선 오빠의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나를 찾아왔다. 내가 서울의 동생 집에 갔을 때,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편도선암에 걸린 상태였다. 재선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비틀거리며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나를 그렇게 타일렀어도 나는 재선 오빠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는데, 그날 그 순간은 모든 무거운 마음이 바람에 날아가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미움이 애처로움으로 바뀌었다.

“동희야. 나 이제 곧 하늘나라로 간다. 내가 죽어 천국에 가면, 네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려 한다.”

그게 1979년의 일이었다. 아마 지금쯤 저 천국에서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인 오빠와 동신 오빠는 재선 오빠와 함께 손을 맞잡고 있을 것이다. 재선 오빠가 젊은 시절 한 순간 잘못된 이념에 현혹돼 저지른 실수는 이제 잊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왜 남의 잘못을 기억하고 정죄하겠는가. 지금은 재선 오빠의 아들이 목회자가 되었고, 나의 아들 박유신 목사도 주의 종이 되어 외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할렐루야!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새로운 소망을 품는 시간이었고, 소중한 생명을 잃은 그 아픔은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이 되었다.

지금 이 시대는 얼마나 예수를 믿기 좋은 시대인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누가 잡아가길 하는가,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는가. 아버지와 오빠가 살던 시대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 시대에도 순교를 각오하고 신앙을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날이 온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기를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