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28)] 밀양 송전탑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입력 2013-07-10 17:24 수정 2013-07-10 14:38

탈핵실천에너지운동 - 원전은 현대판 선악과이다

밀양주민들의 오랜 눈물


지난 7월 8일로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협의체’가 40일의 활동을 끝냈다. 결론은 밀양송전탑 건설을 계획대로 재개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 결과를 밀양주민들이 어느 정도 예측한 바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일방적이고 설득력이 없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8년 동안이나 밀양 주민들은 누대로 살아온 고 향, 몇십 년을 정성들여 가꾸어온 논밭, 식구들과 함께 사는 집과 자식들 다니는 학교 옆으로 76만5000V의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되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왔다. 그러다가 작년 1월, 이치우 노인이 평생 가꾸어온 논 옆에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청계천의 가난한 노동자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죽음으로 소리쳐야 세상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절박하고 비통한 몸부림이었다. 밀양 주민들은 처음엔 국가가 하는 일이니 국민으로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흔히 볼 수 있는 154㎸ 송전선로보다 강한 765㎸ 송전선로가 뭇 생명들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는 전자파를 내뿜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른바 전문가의 견해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토지수용과 보상책들, 밤낮없이 펑펑 써대는 대도시의 전기 수요를 위해 밀양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원거리 고압 전력 수송을 정당화하는 공급 위주의 에너지 정책 그리고 건설 예정인 신고리 3∼6호기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의 수송 등등의 문제들이 이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싸고 줄줄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강행된 공사에 밀양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몸으로 저항하는 일뿐이었다. 나무가 베어져 나가 그늘도 하나 없는 불볕 더위 속에서 굴삭기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알몸으로까지 저항했다. 언제 올지 모를 공사 용역들을 막기 위해 또한 새벽같이 산을 올라야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보건단체연합 등이 밀양의 송전선로 건설 예정지 79명의 농민들의 건강실태를 조사 한 결과, 밀양농민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9·11 테러를 겪은 미국 시민들의 4.1배이고 내전 중인 중동의 레바논 시민들에 비춰봐서도 2.4배나 높을 정도로 심각했다.

대도시 전기소비를 위한 농민들의 희생

밀양 송전탑 문제는, 원전비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신문을 장식하는 ‘전력공급 차질 우려’라는 단어 속에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지역이기주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수도권 시민과 공장들에 무한하게 전력을 공급한다는 난센스에 가까운 전제가 깔려있다. 모든 생활을 전기화할 정도로 펑펑 써대는 전기 수요를 위해 비리 투성이인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그리고 거기서 만든 전기를 머나먼 대도시로 실어 나르기 위해서 한 지역의 공동체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희생이 언제까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야 할까. 만약 서울 강남의 아파트 위로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간다고 하면 그들은 꼭 필요한 국책사업이니 기꺼이 협조한다고 할까? 대도시의 안락함과 편의를 위해 약자를 희생시키고 배제하면서, 그것을 국익이며 성장이라고 강요하면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삶으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물어야할 것이다. 타인에게 고통과 희생을 가해서 얻어지는 안락함, 풍요, 성장이 과연 좋은 것이며 편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루빨리 밀양농민들이 그 긴 고통과 눈물에서 벗어나길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이윤숙(한국YWCA연합회 생명비전연구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