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회 맞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솔한 이야기로 꾸민 한밤의 작은 음악회
입력 2013-07-10 17:31 수정 2013-07-11 00:56
2009년 4월 시작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200회 방송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주 금요일 밤 12시20분 방송되는 심야 음악프로그램. 작은 무대에 초대 가수가 나와 노래 부르고, 진행자인 가수 유희열과 이야기를 나누는 단순한 포맷. 최근 2년간 평균 시청률은 3% 안팎. 외형만 보면 대단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보컬의 신’ 이승철의 신곡부터 아이돌 그룹 ‘B1A4’의 색다른 라이브, ‘솔튼 페이퍼’ 같은 인디 신의 실력자의 음악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지상파 프로그램이다. 다음 달 16일 200회 특집 준비로 분주한 제작진 최재형 문성훈 PD와 이연 서현아 신진영 작가를 최근 만나 ‘스케치북’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 PD는 “시청률과 경쟁 논리만 생각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스케치북만 놓고 보면 4년 정도가 됐지만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로 시작한 이래 20년 넘게 제작 노하우가 축적된 점이 크다”고 했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95년 ‘이문세쇼’, 96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2008년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이어졌고 스케치북이 2009년 그 배턴을 이어받은 셈이다.
그 때문에 아이돌 위주의 음악 순위 방송, 기성 가수들이 벌이는 경연 프로그램, 신인들이 펼치는 오디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송이 생겼지만 ‘실력 있는 뮤지션의 좋은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다는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 무대에 1회 4팀만 서다보니 출연 경쟁이 치열하다. 인터넷 홈페이지엔 팬들의 가수 섭외 요청이 쏟아지고 홍익대 인디 밴드부터 기성 가수까지 신곡 발표 뒤에는 “스케치북에 한 번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최 PD는 “주류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건 음악적 역량이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늘 선택하는 입장일 것 같지만, 반대로 제작진이 섭외를 위해 정성을 쏟는 경우도 많다. 가왕(歌王) 조용필의 쇼케이스 때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적은 화환을 보냈고, ‘들국화’의 경우 연습실과 공연장을 세 번이나 찾기도 했다.
지상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뮤지션을 무대에 세우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쓴다. 최 PD는 “힙합가수 바스코의 경우 지상파에 나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NG를 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관객들이) 함께 짠해하며 울었다. 그럴 땐 정말 이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차별화된 무대를 선보이는 데 주력한다. 최근 ‘씨스타’는 캐나다 출신의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All around the world’와 그들의 신곡 ‘Crying’을 연결해 어쿠스틱 버전으로 불렀고, B1A4는 토이의 ‘그럴 때마다’를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문 PD는 “아이돌 그룹은 판에 박힌 모습 대신 뮤지션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2009년 아이유가 기타를 치며 소녀시대의 ‘GEE’와 빅뱅의 ‘거짓말’을 선보인 뒤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 선례도 있다. 이연 작가는 “아이돌의 경우 MR(반주음악)에 맞춰 무대에 서는 게 익숙하다”며 “밴드나 세션맨(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라이브하는 건 처음이라면서 연습실에서 수차례 연습하고 온 팀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진행자 유희열의 공을 빼 놓을 수 없다. 제작진 사이에서 “유희열씨가 마이크 들 힘이 있을 때까진 계속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유희열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들을 뿐 아니라 뮤지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진행자. 게다가 웃기기까지 하다.
최 PD는 “뮤지션 입장에서 그들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끌어낸다”며 “음악과 이들의 이야기를 살리다보니 방송 녹화 현장에서 유희열씨가 보여준 재기 넘치는 모습이 많이 편집된다”고 말했다.
요즘 제작진은 100회 특집으로 주목받았던 ‘더 뮤지션’을 뛰어넘을 200회 특집을 놓고 고심 중이다. 당시 100회 특집은 작곡가, 세션맨 등 숨어 있는 뮤지션들을 무대에 세워 스케치북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연 작가는 “녹화 뒤풀이를 하면서 스무 개 정도 아이템이 나왔다”며 “당분간 보안을 유지하며 하나씩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