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② 근대병원 개원

입력 2013-07-10 17:16


‘많은 사람 구제하는 집’… 조선민중 의료 문턱 낮춰

“해야 할 업무가 끝없이 쇄도해 그만큼 책임과 초조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따금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한국에 온 최초의 서양 의료선교사이자 고종황제의 어의로도 활동했던 알렌(Horace N Allen) 선교사가 제중원(광혜원) 설립 한 달 뒤인 1885년 5월 12일자 일기에 기록한 내용이다.

한국에 있어 외국 의료선교사들의 사역은 단순한 의학적 치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왕과 왕비뿐 아니라 걸인과 나환자를 비롯한 모든 계층을 상대로 한 ‘열린 치료 사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한말 한국사회의 열악했던 보건·위생 환경은 당시 한국을 찾은 의료선교사들의 어깨를 그만큼 무겁게 했다.

1884년 9월 20일 인천 제물포로 입국한 알렌 선교사는 이듬해 제중원을 설립했고, 첫해에만 2만여명의 조선인 환자가 제중원을 찾았다. 당시 한국의 인구가 1500만여명이고, 수도 서울(한양)의 인구가 30만명으로 추산된다는 점에서 제중원은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큰 역할을 감당했다. 죄인과 환자를 가리지 않고 가까이 하고 치료했던 예수의 사랑을 계급을 초월해 모든 계층에 전달한 것이 당시의 의료선교였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1884년 6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미국감리회 매클래이(Robert S Maclay) 목사는 방문 당시 조선 정부에 “교육과 의료사업을 하고 싶다”고 청원했고, 다음달 고종은 미국인들의 병원과 학교 설립을 허락했다. 이를 단초로 미감리회와 미국장로회가 본격적인 의료·교육 선교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미장로회다. 미장로회는 같은 해 2월 한국선교 기금 모금을 시작했고, 의료선교사로 청년 의사 헤론(John W Heron)을, 복음선교사로는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를 임명했다. 하지만 1883년 중국 선교사로 파송됐던 알렌이 한국 선교사를 자청함으로써 그가 한국 최초 의료선교사가 됐다.

알렌은 입국 이후 본국으로 보낸 첫 편지에서 “현재 이 나라는 선교사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으나, 나는 공사관 소속 의사이므로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시 외국인 선교사의 선교활동이 엄격히 금지됐던 상황을 전했다. 실제 고종은 미국공사로부터 알렌의 임명을 보고받고 “알렌이 선교사가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공사가 공사관 소속의 의사라고 그를 소개해 알렌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의료 선교가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궁중의 신임을 받고 있던 민영익과의 일화가 큰 역할을 했다. 민영익은 1884년 12월 일어난 갑신정변에서 급진개화파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이때 알렌은 독일의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ollendorff)를 도와 석 달간 민영익을 치료해 회복시켰다. 이 사건으로 서양의술의 효과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서양의 의료선교사에 대한 태도도 서서히 변화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중원이 설립된 해 5월 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 6월 헤론이 입국했고, 이듬해 간호사 엘러스(Annie Ellers), 1888년 홀튼(Lillias Horton) 등 의료선교사들의 입국이 이어지며 한국에서의 의료선교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제중원을 통한 서양의술의 보급은 왕실과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에 심겼다.

이후 서양의술의 전파와 선교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893년부터 부산과 인천, 대구, 평양, 개성, 충남 공주, 경북 안동, 전북 군산, 전남 목포 등 전국에 서구식 병원의 설립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의료선교사들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를 뛰어넘어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를 양육함으로써 한국인 스스로 한국의 의료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자문해주신 분>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박용규 총신대 신대원 교수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 △이상규 고신대 부총장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