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한 땀과 눈물 기억합니다” 감사와 위로의 무대

입력 2013-07-09 19:17 수정 2013-07-09 22:16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9일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서곡이 연주됐다. 국민일보와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장 김홍기 지휘 여자경)가 주최하는 ‘파독 50주년 기념 음악회’에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400여명을 포함해 관객 2000여명이 공연을 감상했다. 긴장감 넘치는 현악기 연주가 돋보인 도입부를 지나 꿈결같이 잔잔한 선율이 흘렀고, 장중한 후반부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탄호이저 서곡은 파독 근로자들의 굴곡진 삶을 노래하는 듯했다.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첼리스트 정명화의 연주도 이어졌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정명화의 생상스 첼로협주곡 제1번 a단조, 작품 33은 제3부까지 힘찬 합주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계속되는 박수갈채에 정명화는 다시 등장해 예정에 없던 한 곡을 더 연주하기도 했다.

음악회는 파독 산업전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를 전하려 마련됐다. 독일에 정착한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출신 교포 12명이 이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찾았다.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 주민 30여명을 포함해 국내에 거주하는 파독 근로자 400여명도 자리를 빛냈다.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파독 간호사 출신 김경진(63·여)씨는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아름다운 곳”이라며 “생업 때문에 자주 올 여건이 안 돼 늘 아쉬웠는데 우리를 잊지 않고 초청해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존넨 샤인(Sonnen Schein)’. 파독 간호사들은 ‘빛나는 햇살’이란 뜻의 애칭으로 불렸다. 1963년 12월 한국 역사상 최초로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날아간 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고 고된 근무를 해야 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국인 특유의 친절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했기에 가능한 별명이었다.

힘든 순간도 있었다. 1973년 독일로 떠나 광산에서 하루 7시간씩 허리를 굽힌 채 일했던 신형식(67)씨는 젊은날을 떠올리면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신씨는 “내 가족을 먹이고 외화를 벌어 나라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사회로 꾸며진 이날 무대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소프라노 서선영, 오스트리아 빈 국립극장 전속 가수인 테너 정호윤, 클라리넷 연주자 김민아 등 정상급 음악가들이 함께했다.

마지막 무대는 소리꾼 장사익이 부르는 ‘아버지’였다.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얘야,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젖히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구성진 가락이 이어지자 관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파독 광부였던 이장순(66)씨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일보 김성기 사장은 “이 자리는 반백년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파독 근로자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와 위로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이국땅에서 흘린 눈물과 땀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파독 근로자들이 흘린 땀방울이 조국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며 “파독 근로자들의 헌신과 노력을 되새기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