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통역·따뜻한 위로… 샌프란시스코의 교포 천사들

입력 2013-07-09 18:48 수정 2013-07-09 22:39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유고명(66)씨는 지난 6일(현지시간) 오후 라디오를 듣던 중 자리를 박차고 집을 나섰다. 라디오에선 ‘한국 항공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추락했고, 부상자에 한국인이 다수 포함됐을 것’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자문위원으로 있는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메리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한국인 부상자 2명이 입원해 있었다. 그들은 얼굴, 가슴 등의 통증을 호소했지만 미국 의료진은 환자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유씨는 곧바로 통역에 나섰다. 부상자 중 김모(19)양은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온 사촌언니의 안부를 걱정했다. 유씨는 수소문 끝에 김양의 사촌이 다른 병원(CPMC)에 있다는 것을 파악해 김양에게 알렸고, 김양을 데려가 사촌언니와 만나게 했다. 두 사람 다 경상이어서 금방 퇴원했지만 이들은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였다. 여행가방도 잃어버려 입을 옷조차 없었다. 유씨는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유씨의 아내는 이들에게 옷과 따뜻한 죽을 끓여 주며 다독였다. 이튿날 유씨는 이들을 영사관으로 데려가 임시여권을 만드는 것을 안내해 주고 귀국을 도왔다. 유씨는 이후 병원을 돌아다니며 총 7명의 한국인 환자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고, 환자들을 보살폈다. 유씨는 8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인 의사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인 부상자들은 안심하는 듯했다”며 “내 나라 내 동포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씨뿐이 아니었다. 아시아나 여객기 착륙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샌프란시스코 현지 동포들이 사고 수습과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와 실리콘밸리 한인회는 8일 한국인 부상자들을 포함한 사고기 탑승객들에게 전달할 트레이닝복과 속옷, 양말 등 생필품 200여명분을 구입했다. 실리콘밸리 한인회 나기봉 회장은 “이곳 병원은 새벽 시간에도 에어컨이 나와 부상자들이 환자복 위에 입을 옷이 없어 추워하더라”며 “병원 내 물품 반입 절차가 해결되는 대로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한인회원들은 사고 첫날부터 자원봉사자를 배치해 퇴원 수속 등을 포함한 통역서비스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전일현 회장은 “한국 국적기가 사고가 난 만큼 우리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피해를 당한 중국인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중국 영사관과도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한인단체, 한국기업 현지법인 등은 현지 중국인 커뮤니티를 방문해 조의를 표하고, 단체별로 성금을 모금해 현지 적십자사와 중국 총영사관을 통해 희생자 유가족 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또 한국계인 제인 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을 중심으로 이곳 한인 1.5세, 2세들도 별도로 성금모금을 하고 있다.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한국인 입원환자 수는 속속 줄고 있다. 한국 총영사관은 8일 인근 병원에 입원 중인 한국인 부상자의 수가 8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한동만 총영사는 “현지 의사와 협의를 거쳐 이날 오전 중에 4명이 퇴원했고, 2명도 곧 퇴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추가 치료가 필요한 한국 부상자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40대 남녀 1명씩 총 2명이다.

샌프란시스코=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