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가업승계 어려워 당황하셨어요?” 팔걷은 은행

입력 2013-07-09 18:04


경기도 안산에서 소규모 철강 도매업을 하는 A씨(75)는 이른바 우리나라 창업 1세대다. 지난해 총자산 10억원, 매출액 35억원, 순이익 2억원을 기록한 그의 사업장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청춘을 다 바친 자식 같은 곳이었다.

A씨는 최근 아들에게 이 가게를 물려주기로 결심하고 IBK기업은행에 가업승계 컨설팅을 의뢰했다. 동년배였던 인근 회사 오너가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게 계기가 됐다. A씨는 컨설팅팀에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언제까지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들이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중소·중견기업의 가업 승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나타난 창업 1세대들이 본격적인 ‘퇴장’을 준비할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불황으로 자녀의 취업마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자 금융회사에는 가업 승계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각 금융회사들도 전담 컨설팅팀을 잇따라 발족하고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A씨의 문의를 받은 기업은행은 소속 세무사와 회계사, 변호사를 보내 자산 승계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A씨는 그동안 사업이 비교적 잘 됐지만 법인으로 전환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남았다.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혼자 키워온 사업을 가지고 법인을 세울 경우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컨설팅팀 검토결과도 A씨와 같았다. 개인사업소득세가 법인세보다 세율이 높지만 사업 성격 상 법인전환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 재산이 많은 A씨의 사정을 감안해 가업 승계는 물론 개인 재산 상속에서의 절세 부분도 검토에 착수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A씨가 약 10억원 정도의 절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회사는 주로 안정적인 소유구조, 다수의 자녀에 대한 지분 분산 승계 등을 통한 절세 전략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이어 가업 승계 시 나타날 수 있는 경영상의 이슈 등을 사전 점검해 후계자 수업에도 나선다. 절세를 위해 일부 사전증여 등을 실행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2세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것까지가 컨설팅 팀의 주 임무다.

경기도 수원의 절삭공구제조업체 대표인 B씨의 경우 이 같은 컨설팅을 통해 20억원의 세금을 줄일 수 있었다. 73세의 고령이었던 그는 최근 회사에 입사한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 했지만 상속·증여세 부담과 가업승계 절차를 두고 막막해하던 중이었다.

컨설팅팀은 B씨 회사의 비상장주식 평가 및 향후 평가액 변동 추이를 예측해 일정 지분을 다수의 자녀에게 사전 증여토록 했다. 현재는 총자산 40억원, 매출액 80억원에 불과하지만 사업 전망이 매우 밝아 향후 주식 가치가 급등할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또 자녀간 소유지분을 명확히 해 경영권 다툼없이 ‘장수’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금융회사들은 최근 가업승계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001년부터 기업컨설팅팀을 구성해 가업 승계 자문을 해오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정기적으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를 초청해 ‘가업승계 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하나·NH농협·기업은행 등도 전담팀을 추가 편성하는 등 컨설팅 서비스를 확대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상속세가 굉장히 높은 편이어서 세제 관련 업무가 컨설팅 팀의 주 업무”라며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최근 가업 승계를 문의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