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투자자 울리는 금융당국… 금감원, 비리기업 제보 수차례 묵살
입력 2013-07-10 06:56 수정 2013-07-10 08:30
금융감독원이 불공정 거래를 일삼은 기업의 비리를 제보받고도 수차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된 기업은 결국 문을 닫았고, 주식은 상장폐지됐다. ‘개미’ 투자자 수천명은 수백억원의 손해를 봤다.
서울행정법원 제2부(부장판사 윤인성)는 개인투자자 남모(45)씨가 불공정 거래 신고 포상금을 지급하라며 금감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금감원의 책임 방기와 은폐 혐의가 드러났다는 데 있다. 거듭되는 불공정 거래 의심 신고를 모두 묵살한 금감원이 막대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조사를 벌였고, 직무유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신고자에 대한 포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배합사료 제조 업체 세븐코스프에서 횡령 등 부정 거래가 벌어지는 의혹이 짙다며 2009년 12월 말부터 2010년 4월 초까지 세 차례 금감원에 신고했다. 그때마다 금감원은 ‘횡령 조사는 사법 당국 소관으로 금감원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사 선임 현황까지 첨부한 세 번째 불공정 거래 신고에 대해서는 참고자료로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1년 후 세븐코스프가 증시에서 퇴출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세븐코스프는 외부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감사의견 제시를 거절하면서 2011년 3월 상장폐지됐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이 회사 소액주주는 3591명이었다. 소액주주들은 전체 주식의 98.5%인 5322만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액면가 500원으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741만원씩 모두 266억원에 이르는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됐다.
금감원은 상장폐지되고 난 뒤인 같은 해 6월 말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불공정 거래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고, 뒤늦게 지난해 3월 말 세븐코스프 최대주주 신모씨 등 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남씨는 금감원에 포상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금감원은 남씨가 아닌 제3자의 제보로 조사에 착수했고, 남씨의 신고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재판부는 금감원이 제시한 제3자 제보는 세븐코스프의 불공정 거래와 관련이 적고 내용도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2009년 코스닥 상장사 IC코퍼레이션의 분식회계 의혹 등을 제기한 양모(62)씨에 대해서도 포상금 지급을 거부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양씨는 2007년 말부터 문제를 제기했지만 금감원 조사는 2008년 9월에야 이뤄졌다. IC코퍼레이션은 결국 이듬해 4월 상장폐지됐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