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실상] “폭행 당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건 주위의 무관심”

입력 2013-07-09 18:19


<상> 우울증 치료 받는 피해 학생의 참담한 심경

대구중학생 자살사건으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1년5개월이 지났지만 학교폭력의 망령은 여전히 학교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수없이 내놓은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해자들은 활개를 치고 있고 피해자들은 숨죽여 흐느끼고 있다. 대책은 겉돌고 고통은 깊어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현장교사를 차례로 만나 그들의 육성을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싣는다.

“폭행 그 자체보다 괴로운 건 ‘난 왜 이렇게 못났나’라는 자괴감과 아무도 도와주거나 위로해주지 않는 외로움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3년간 지독한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Y양(18)은 정신과에서 우울증 고위험군 진단을 받고 현재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폭행이 이뤄진 기간 왕따였던 Y양은 지난해 말 인근 하천에 투신하려 했다. 마지막 순간 가족 생각에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현재는 가해학생이 학교를 자퇴하고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잠시 악몽에서 벗어난 상태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Y양과 최근 경기도의 한 여고 위(Wee)클래스에서 인터뷰했다. Y양은 “선생님들이 3년 전 폭행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더라면 저도 그 친구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맞았는가. 맞을 때 든 생각은?

“보다시피 제 머리카락이 길어요. 그 아이는 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둘둘 말아 움켜쥐고 뺨과 머리를 때렸어요. 잡혀서 발로 복부를 맞기도 했습니다. 걔가 덩치가 커서 한번 잡히면 폭행이 끝날 때까지 저항할 방법이 없었어요. 아프다는 생각보다 저를 도와줄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정말 죽고 싶어지더라고요.”

-자살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집 주변에 하천이 있는데 뛰어내리려고 가본 적도 있고, 달리는 차도로 뛰어들어본 적도 있어요. 너무 마음이 답답해서…, 가족들 없을 때 칼로 손목을 긋는 상상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용기도 나지 않고 죽는 게 억울하기도 해서 안 했어요. 지금은 보건소에서 상담받고 있어요, 위 센터에도 꾸준히 다닙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해요.”

-언제부터 맞았나.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 없어 싸가지도 없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이후 왕따가 됐습니다. 중학교 때 외로운 상태에서 그 애가 먼저 다가왔어요. 저는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저를 똘마니 취급하며 부려먹었어요.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때리고, 사과하는 일이 반복됐어요. 나중에는 자기 친구들에게 ‘얘는 내 노예’라며 본격적으로 때렸어요.”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나.

“중학교 때 폭행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때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귀찮아하시며 그냥 ‘화해하라’는 얘기만 하셨어요. 제가 얘기하자 당시 그 애도 많이 당황했었는데 선생님이 무관심하니까 이후에 더 심하게 굴었어요. 가족에게는 딱 한번 얘기해봤는데 다들 일 때문에 바쁘셔서…, ‘그냥 걔랑 놀지 마라’는 정도였어요. 또 속상하실까봐 그리고 자존심 상해서 더 이상 말씀 못 드렸어요. 한번은 비 오는 날 운동장 한 구석에서 정말 심하게 맞는 것을 목격했던 친구들 모두 외면한 적 있어요. 함께 왕따 당할 각오가 없다면 도와주기 어렵죠.”

-폭행이 어떻게 멈췄나.

“그 애도 가정환경이 안 좋았어요. 학대를 받는 것 같았어요. 그 분풀이 상대가 저였죠. 무슨 이유에선지 자퇴를 했고 학교라는 울타리도 없어지니까 더 심해졌어요. 밤에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창에 불러 새벽까지 제 욕을 하는 것을 지켜보도록 했어요. ‘채팅창에서 나가면 내일 죽여버린다’고 협박해 다음날 학교 가야 하는데도 계속 지켜봤어요. 어느 날 시내 한복판 뒷골목에서 그 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맞은 일이 있어요. 신고가 들어갔는지 경찰이 왔고, 그 이후에 그 애는 숨어 지낸다고 들었어요. 서울로 갔다는 얘기도 있고.”

-어른들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그 애는 빨리 잡혀서 대가를 치러야 해요. 지금도 그 친구가 언제 나타나 보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잠을 못자요. 때린 만큼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안 그럴 거예요. 단 한 대를 때린 것도 때린 거죠. 벌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 애도 처음에 따끔하게 혼났다면 지금 모습과 다를 거예요. 지금 대가를 치르는 것이 그 애 장래에도 좋을 거예요.”

-장래희망은?

“조련사 같이 동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왕따 오래 당하니까 동물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법을 알아요(웃음). 상담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상담교사도 되고 싶어요.”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