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정부 무능… 빈 라덴 9년 은신 가능했다
입력 2013-07-09 17:54 수정 2013-07-09 23:20
2001년 일어난 9·11테러의 장본인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9년 동안이나 은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키스탄 정부와 정보기관의 무능 때문이었다고 알자지라가 파키스탄 정부 보고서를 인용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당 보고서는 빈 라덴 사살 과정 조사를 위해 2011년 설립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위원회’가 빈 라덴의 가족과 정부 고위관계자를 포함한 사건 관계자 및 목격자 200여명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빈 라덴은 2001년 12월 은신하던 아프가니스탄 토라보라 동굴에서 탈출, 2002년 파키스탄에 들어왔다. 이후에는 도피와 은신의 연속이었다.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그가 남와지리스탄과 바자워 부족 자치구를 거쳐 북부 스왓밸리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측근으로 알려진 알 쿠와이티 등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였다.
스왓밸리에서 지내던 2003년 초 빈 라덴은 9·11테러 기획자로 유명한 칼리드 샤이크 모하메드를 만나기도 했다. 모하메드가 라왈핀디에서 미군에 붙잡히기 한 달 전이었다. 모하메드가 붙잡힌 일이 계기가 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리푸르로 또 옮겼다. 이곳에서는 두 아내와 자녀들, 손자들과 함께 2년 가까이 살았다.
그의 마지막 거주지가 되는 아보타바드에 간 건 2005년이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85㎞ 떨어진 곳이었다. 이후 빈 라덴은 동굴도 지하실도 아닌 휴양지의 넓은 저택에서 6년을 살았다. 주택가와 거리가 있는 곳에 뚝 떨어진 큰 집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고 경비도 삼엄했다. 모두의 눈에 띄는 집이었지만, 경찰도 정보당국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빈 라덴은 미국의 위성감시를 피하기 위해 카우보이모자를 쓰거나 깔끔히 면도하는 등 변장도 마다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했다.
2005년 무렵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빈 라덴 수사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게 보고서의 평가다. 빈 라덴이 은신해 있던 기간 내내 파키스탄에선 사법 및 통치 질서가 붕괴돼 있었다고 한다. “정치·군사·정보 지도층의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직무 유기” 상태였다. 무장세력의 잇따른 발호, 대지진 등이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빈 라덴 사살 작전은 파키스탄군 참여 없이 미 특수부대에 의해 이뤄진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용된 알카에다 요인들로부터 은신처와 측근 알 쿠와이티 등에 대한 정보를 확보한 덕분이었다. 2011년 5월 1일 빈 라덴은 은신처에서 목숨을 잃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