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미국 외교의 추락
입력 2013-07-09 17:33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하루하루가 악몽의 나날일 것이다. 이미 보수단체에 대한 국세청(IRS)의 차별적인 세무조사와 언론인 정보 사찰로 궁지에 몰린 터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스노든은 자신의 폭로가 촉매가 돼 국가 권력의 시민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일어나길 바랐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실망하고 있을 듯하다. 미국 내에서 정보기관의 개인 정보 수집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의 송환을 둘러싼 국제적인 줄다리기가 사태의 본질이 된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아름답지 않은’ 미국 외교의 맨얼굴과 추락하는 국가 위신이다. 내부고발자인 자국 시민 한명을 잡아들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조용한 설득과 막후 교섭이라는 외교적인 수단이 전혀 먹혀들지 않을 정도로 미국의 국력이 약해진 것인가.
우선 세계인들은 희극에 가까운 미국-러시아 위상의 역전을 보고 있다. 미국은 스노든이 러시아 공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국제 규정에 따라 스노든을 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러시아는 이 요청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미국인 내부 고발자가 러시아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했다.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중단하라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압박해 온 미국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압권은 “그(스노든)가 이곳에 머물기 원한다면 파트너인 미국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끝내야 한다”며 짐짓 미국을 걱정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실제 망명할 경우 껄끄러운 대상인 스노든의 망명 의사를 꺾는 동시에 미국의 반발도 누그러뜨리는 푸틴의 ‘재주’를 미국은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했다.
전통적인 유럽국가들과의 신뢰도 크게 손상됐다. 유럽연합(EU) 본부와 회원국 주요 시설에 대한 무차별적인 감청과 불법 정보 수집 자체보다도 사후 처리가 더 문제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태 직후 “다른 나라들도 다 정보 수집을 한다”고 말해 유럽인들의 분노를 샀다.
남미 국가들과의 파열음은 미국 외교의 오만과 미숙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등 유럽 4개국이 스노든이 탔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의 영공 진입을 불허했는데 그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특별한 국가이며, 항상 바르다’라는 뿌리 깊은 ‘미국 예외주의’가 다시 사고를 쳤다고 볼 수 있다. 어떻든 이 사건으로 미국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으로 해체 경로를 밟는 듯했던 ‘남미의 반미국가 연합’이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언론들은 스노든 사태가 미국 국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 국력의 한계는 ‘스노든을 왜 이처럼 무리해서라도 송환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지 않는 풍토와 더 관계있을지 모른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스노든 추적을 통해 미국은 민감한 국가 기밀의 누출을 일부 늦추거나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버드대 교수 조셉 나이가 말한 매력과 자발적 동의라는 ‘소프트 파워’의 고갈을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