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진주의료원 폐업’ 홍준표 경남도지사 “노조 배불리기에 수십억 주느니 극빈층 무상의료”
입력 2013-07-09 17:22 수정 2013-07-09 23:50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해 야당은 물론 정부와 여당 일각으로부터 비판받고 있음에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흔들림이 없었다. 창원의 경남도지사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많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쟁점사안마다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이따금 환하게 웃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이 옳다는 소신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현재 ‘공공의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진주의료원 파문을 계기로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계획서’에 따라 국조특위는 오는 13일까지 활동을 이어간다. 여야는 홍 지사에게 국조특위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으나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문제가 ‘지방의 고유사무’여서 국정조사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에 따른 논란은 국조특위 전체회의가 열린 9일에도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 공포까지 왔는데, 향후 계획을 밝혀주십시오.
“진주의료원은 이제 흘러간 문제라고 봅니다. 경남도를 대법원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던 정부가 제소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정치적 논쟁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이제 청산 절차만 남은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남도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진주의료원을 매각해 진주의료원 채무를 변제한 뒤 남은 비용은 경남지역의 어려운 서민을 위한 의료비 지원에 사용할 예정입니다. 현재 경남에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7만8000여명으로, 이들의 본인 부담금이 연 32억원 정도 됩니다. 이를 전액 도에서 부담할 것입니다. 강성노조 배불리기에 수십억을 주느니 극빈층에 대해 직접 의료지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상의료’인 셈이지요. 아울러 서부경남지역의 보건소 시설과 의료장비를 확충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진주의료원을 매각하려면 중앙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요.
“승인을 기대합니다. 만약 정부가 승인하지 않는다면 매각하기 전에 진주의료원에 지원된 국비를 반납하면 될 것입니다. 중앙정부의 승인 여부는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강성노조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1999년 김혁규 경남도지사 때 진주의료원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나 처음으로 폐업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2005년 독립채산제가 도입된 이듬해부터 적자가 쌓여가기 시작했고, 강성노조가 자리 잡았습니다. 2008년에는 경상대와 동아대 등에 위탁하는 방안을 시도했으나 강성노조로 인해 좌절됐고요. 또 2008년부터 경남도에서 36차례, 도의회에서 11차례 등 총 47차례에 걸쳐 경영개선을 요구했지만 노조는 거부했습니다. 바로 전임인 김두관 경남도지사 시절에도 160억원을 줄 테니 구조조정을 하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의료의 질과 서비스는 계속 떨어져 적자가 계속 늘어났지요. 그럼에도 지난해 순수의료수익 136억원 가운데 135억원이 인건비와 복리후생비로 지출됐습니다. 게다가 노조는 고용세습과 과도한 진료비 감면, 징계위 노사동수 구성 등 온갖 특혜를 누렸습니다. 진주의료원의 누적 부채 279억원이 노조의 기득권 유지에 투입된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진주의료원은 공공병원이 아니라 노조가 경영하는 노영(勞營)병원이었습니다. 강성 귀족노조의 해방구로 전락한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홍 지사가 폐업을 밀어붙이기 전에 노조와의 대화 등 진주의료원을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혁규 도지사 시절부터 14년간의 기록이 다 있습니다. 내가 노조와 대화해봤자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전임 도지사들 때에 많이 했습니다. 더욱이 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의 사용자도 아닙니다.”
-홍 지사의 폐업 방침에 대한 경남지역 여론은 어떻습니까.
“귀족노조의 행태를 아는 주민들은 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차제에 폐업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지요. 실제로 진주의료원은 서민들을 위한, 그리고 서민들이 애용하는 병원이 아닙니다. 다른 병원에 비해 기초생활수급자가 찾는 비율도 훨씬 낮습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이런 점들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34개 도립 의료원 가운데 진주의료원이 가장 악성입니다.”
-진주의료원을 이름만 바꿔서 새로운 병원으로 문을 열 것이라는 추측도 있는데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러면 바로 위장 폐업 시비가 발생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음해성 유언비어입니다.”
-강성노조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경남도의 재정 건전화를 들 수 있습니다. 경남도의 채무는 무려 1조3488억원입니다. 출자출연기관 부채 5812억원을 포함하면 2조원 정도 됩니다. 재정이 너무 황폐화돼 파산 직전입니다. 채무를 갚기 위해선 도청 청사까지 팔아야 할 지경입니다. 도청 간부들의 업무추진비를 10% 삭감한 데 이어 추가로 삭감할 계획이고, 도청 청사 내 에어컨도 가급적 틀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걸 절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성을 상실한 진주의료원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죠. 지역의 살림살이를 담당하고 있는 세금 관리자가 부당한 세금 집행을 방치해선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진주의료원 폐업은 도민세금을 제대로 집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진주의료원을 폐업하지 않으면 결국 도민들의 혈세가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합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공직자로서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닙니다.”
-재정 건전화를 위한 복안은 갖고 있습니까.
“경남도의 산업은 창원을 중심으로 한 기계공업산업과 거제를 중심으로 한 조선공업산업이 이끌어왔습니다. 이 두 가지를 최첨단 기술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사천과 진주를 중심으로 한 우주항공산업, 밀양을 중심으로 한 나노테크산업, 경남 북부의 항노화산업, 남부의 신재생에너지산업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경남의 새로운 미래 50년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
“3년 정도면 틀이 잡힐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쪽에서 요구하고 있는 주민투표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앞서 얘기한 대로 경남도의 채무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주민투표에는 1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주민투표가 실시되더라도 내년 상반기나 돼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포괄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봅니다. 주민투표는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주의료원 문제는 진주와 그 주변지역의 문제이지, 경남도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주민투표를 하자는 주장은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는 말이지요.”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홍 지사를 지지하는 의원이 많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근거는 무엇입니까.
“진주의료원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아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내용을 모른 채 여론에 휘둘려 인기에 영합하는 발언을 하는 의원들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요.”
-홍 지사 개인적으로 볼 때 득실을 계산해본 적은 있나요.
“지금까지 나는 득실을 따져가면서 일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옳은가, 그른가만 판단되면 좌고우면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도 그렇습니다. 건드리면 고통만 가져다 줄 벌집인 줄 알면서 세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건드렸다고 할 수 있죠.”
-차기 대선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도 선출직입니다.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지금의 프레임은 저에게 결코 유리한 게 아닙니다. 왜 노조를 상대로, 야권을 상대로 힘든 일을 하겠습니까. 오히려 의료원을 늘리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략적으로 접근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취임하자마자 진주의료원을 건드린 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을 법한데요.
“그런 것 없습니다. 김혁규 도지사 시절부터 14년 동안 도지사들이 머리를 앓아가면서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내 차례에서 터진 것뿐입니다.”
-여하튼 이번 사태로 이념갈등이 더 첨예해졌습니다. 경남도를 이념갈등이 없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홍 지사의 다짐과도 어긋납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떠신지요.
“진주의료원 문제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태 등 갈등을 증폭시켜 온 세력들이 다시 뭉쳐 지방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안을 이념갈등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도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고소·고발이 난무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듯한데, 이를 어떻게 수습할 계획입니까.
“소모적 논쟁은 지양돼야 합니다. 진주의료원 매각 절차를 밟으면서 지역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경남 발전을 염원하는 도민들의 마음을 한 데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경남의 미래와 도민의 행복만을 염두에 두고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국회 국조특위 활동과 관련한 입장을 간단히 밝혀주십시오.
“수차례 언급했듯이, 지방의회의 감사·조사 대상인 지방고유 사무를 국정조사하겠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경남도의 고유한 자치사무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국조특위가 지방고유 사무를 대상으로 기관보고를 요구하거나, 지방자치단체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다만 지난 3일 보건복지부가 국정조사를 받을 때 경남도 공무원들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것처럼 공공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국정조사에는 동의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한 복지부의 태도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진주의료원 폐업·해산 처리 과정에서 공공병원과 공공의료를 구분하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게 올바른 방향입니다. 강성노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공공병원 확충은 옳지 않습니다.”
-국회에서 최근 지방의료원이 폐업 전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지방의료원법, 일명 ‘진주의료원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방자치법을 보면 보건진료기관의 설치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방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도 지방사무로 규정하고 있고, 다른 어떤 법률에서도 보건지료기관 운영에 대해 국가위임 사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법상 지자체 고유사무에 대해 지방의료원 폐업 때 미리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지방고유 사무에 대해 중앙정부가 통제를 하려고 한다면 운영비 등 국비 지원도 의무화해 의료원 업무를 국가보조사업으로 전환하는 대책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차기 대선 구도를 전망해주십시오.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을 위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쿠데타에,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 후보의 잘못이나 전(前) 정부의 실정 등으로 인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지, 본인이 잘해서 대통령이 된 경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창원= jhkim@kmib.co.kr